2016년 8월 29일 월요일
이석수 사표와 감찰 비리천국?
감투만 많다고 국가기강이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2012년 18대 대선당시 새누리당 박근혜후보가 대통령 주위 비리를 감시할 수 있는 특별감찰제를 시행하겠다는 공약에 맞춰, 2014년 3월 18일 특별감찰관법을 제정하고, 2014년 6월 19일 그 법이 시행됐다. 그리고 초대 특별감찰관(차관급)으로 이석수 변호사가 그 자리에 임관됐다.
법은 국회에서 3명의 변호사를 서면추천하면, 대통령이 그 중 한 명을 지명하고, 다시 국회 청문회를 열어 임명하게 됐다. 특별감찰관 권한 대상은 대통령의 배우자와 4촌 이내 친족 그리고 대통령비서실의 수석비서관 이상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수사권한이 없어 수사는 결국 검찰에게 맡겨야 한다. 국민의 신뢰가 없는 검찰이 수사를 한다면 결국 특별감찰이 필요할까?{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겠다는 발상 아닌가?}
허울뿐인 특별감찰제도의 특별감찰관 임기는 3년으로 중임할 수 없으며, 정년은 65세까지다. 감찰 직무수행에 필요한 범위에서 1명의 특별감찰관보와 10명 이내의 감찰담당관을 임명할 수 있으며, 직무수행을 위하여 필요한 때에는 총 20명 이내의 한도 내에서 감사원, 대검찰청, 경찰청, 국세청 등 관계 기관의 장에게 소속 공무원의 파견 근무와 이에 관련되는 지원을 요청할 수 있게 했으나, 오직 감찰만 하는데, 그 감찰 대상자도 그 직급이 부여된 시기부터 하게 했다.
예를 들어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감찰은 민정수석이 된 이후부터 비행에 대한 것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석수 감찰관은 1300억대 우병우 민정수석 처가 부동산을 사들인 넥슨코리아와 진경준 검사장과의 관계는 포함되지도 않았다. 단지 우병우 아들 꽃보직과, 직원도 사무실도 없는 우병우 처가 회사인 (주)정강만 감찰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모 일간지 기자에게 감찰내용을 누설했다는 것이다. 단지 이석수 감찰관은 "우 수석이 계속 버티면 검찰이 조사하라고 넘기면 된다."고 말을 했을 뿐이데, 청와대는 "중대한 위법행위이자 묵과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발끈하고 이 감찰관이 법을 어겼다며 검찰 수사를 종용하고 나선 것이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감찰관 감투를 쓰고 있으면서 검찰 수사를 받기보단 차라리 민간인 신분으로 수사를 받겠다며 사표를 냈다. 특별감찰관실 관계자에 따르면 "정상적 직무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공정성도 지켜내지 못하는 청와대가 될 것 같다. 여타 언론들도 그렇지만 세계일보는 “이 감찰관이 독립적으로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공정성 문제가 제기됐고 그 이유로 수사를 받게 됐다는 점에서 특별감찰관 제도의 실효성은 검찰 수사 결과에 달리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감찰관이 수사의뢰한 우 수석 의혹에 대해 유의미한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올 경우 특별감찰관 제도에 대한 지지가 높아질 것이라는 점에서다. 반대로 검찰이 우 수석과 관련한 의혹에서 별다른 문제점을 찾지 못할 경우 이 감찰관의 감찰 유출 의혹이 더 부각되는 한편 제도 개선 목소리도 여권에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적고 있다.
교육부에서 근무했던 나향욱 전 정책기획관이 대한민국 국민을 “개·돼지”로 언급한 입장에서 볼 때, 그 개·돼지들은 그래도 청와대 안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최고의 석학이라는 것만으로 이해하고 있었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들은 언론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영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있다. 아마도 안하무인(眼下無人)? 이들도 국민을 개·돼지로 인정한다는 말인가!!! 논법 상 틀렸다고 하실 분은? 어떻게 이들을 믿고 국가를 맞길 수 있다는 것인가?
여야 할 것 없이 새로운 대표체제로 들어가고 있다. 여권은 벌써 20일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도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확실한 언급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국민의 원성은 쉴 사이 없이 터져 나오고 있지만, 3권 분립의 한 축은 일갈(一喝)의 대꾸도 없다. 이정현(58)도 별 볼일 없는 인물? “새누리당은 박근혜의 환관”이라는 글이나 보인다. 그렇다면 야권의 제1야당 추미애 신임대표는 어떤 구상을 갖고 있나? 당대표 된지 일주일도 안 된 사람에게 무슨 것을 기대하겠는가? 그러나 사드(THAAD;고(高)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만 결사반대할 것 같은 뉴스만 있다. 그리고 정치선배들에게 전화걸기 바쁘고, 전직 대통령묘지 찾기 바쁘단다. 아직 무슨 대안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 두 대표들이 하는 것 없이 세월만 보낼 것인가? 앞날이 캄캄해서는 안 되는데, 특별한 것이 보일 것 같지 않아 안타까운 심정이다.
고려 공민왕 때부터 우리나라에는 사헌부(司憲府)라는 감찰기관이 세워진다. 물론 그 이전 신라에서도 공직자들의 감찰은 시행했지만 정식으로 감찰기관이 생긴 것은 고려 후기가 맞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 사헌부제도를 지금 어느 부서에서 하는가? 일반적으로 감사원을 과거 사헌부와 비슷한 제도로 인식하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과거에도 그랬지만 정치를 하는 인물들은 단 하루도 맑고 청정한 세월을 갖고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어떤 망극한 역사가는 비위와 비리 정치인이 없었다면 역사도 없었다는 망언을 하지 않던가!
조선왕조 건국 직후에 반포된 태조신반관제에 의하면 사헌부내에 정5품의 잡단(雜端)을 2인을 두고 있었는데, 1401년(태종 1) 7월 관제개혁 때 잡단이 후에 ‘지평(持平)’이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잡단을 지평으로 고치고 이것이 그대로<경국대전>에 법제도 되었다. ‘법을 공평하게 유지한다.’는 말이다.
사헌부 직무는 시정(時政)을 논집(論執)하고, 백관을 규찰하고, 풍속을 바로잡고, 원악(寃抑)을 풀어주고, 남위(濫僞)를 금하는 등의 일을 맡았다. 백관의 비위사실에 대한 탄핵감찰권(彈劾監察權)과 일반범죄에 대한 검찰권을 아울러 행사할 수 있는 동시에 불복공소(不服控訴)에 대한 지금으로선 고등법원 구실까지 겸하는 등 왕지(王旨)를 받아 법률을 집행하는 법사(法司)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인사(人事)와 법률개편의 동의 및 거부권행사라고 할 수 있는 서경권(署經權) 등 국정전반에 걸쳐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지평은 물론 사헌부 대관(臺官)들은 그 책무가 막중한 것을 알아, 자기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직언할 수 있는 강직한 젊은 석학들을 임명시켰다고 한다. 젊음의 피가 맑은 것 같이 정신도 마음도 맑지 않은가! 그 대부분 새로 문과에 급제한 자들로 직배(直拜=과거합격자 가운데 갑과 합격자를 곧바로 벼슬에 임용)하거나 승문원·성균관·홍문관 등을 거친 자들이 임명되어 충언을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후일 당파에 따라 그 관직을 서로 자기당파에 넣겠다고 아우성을 친 이유도 권력을 잡기 위한 때문 아니었던가?
검찰이 지금 국민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도 젊은 청년검사들을 기득권층에서 매수하고, 검사 고유의 권한을 활용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검찰이 인정을 못 받는 것이다. 그저 나이와 기수만을 앞세워, 검사고유의 독립체를 무시하고, 정치에 활용하는 정권들로 인해 검찰이 무능력하게 된 것 같이, 감사원도 그 기능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아무리 대통령 옆에 특별감찰관을 두면 무엇 할 것인가? 기능조차 엉성한 기관에 지나지 않은 것 백 개를 둔 들 누가 눈 하나 깜짝이나 할 것인가? 그저 국민 세금이나 축내는 인물 만들어 놓고 특별감찰 한다는 말만 앞세우더니, 결국 그조차 자기 말 안 듣는다고 잘라내고 있잖은가? 비리의 핵심으로 국민은 인정하려고 하지만, 권력자가 자기 권력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데 비리를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을 것인가? 박근혜가 그 자리를 뜨기 전에는 모두 다 부질없는 짓 아닌가? 능력도 발휘할 수 없는 야권은 지금도 언론사 플래시(Flash) 앞에서 포즈(pose) 취하기에 바쁜 것은 아닌가?
연합뉴스
참고가 된 원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1&aid=0008649184
https://ko.wikipedia.org/wiki/%ED%8A%B9%EB%B3%84%EA%B0%90%EC%B0%B0%EA%B4%80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175253&cid=43667&categoryId=43667
https://www.newikis.com/ko/wiki/%EC%82%AC%ED%97%8C%EB%B6%80
http://news.mtn.co.kr/newscenter/news_viewer.mtn?gidx=2016082917281149296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61887&cid=46622&categoryId=4662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sid2=269&oid=022&aid=0003091539
초대 감찰관 사퇴… 흔들리는 특감제
임명권자 대통령이 힘 안 실어주면 사실상 유명무실 제도로 전락 우려 청 “이석수 사퇴·우병우 거취 무관”대통령 직속 이석수 초대 특별감찰관이...
news.naver.com
2016년 8월 27일 토요일
추다르크가 더민주 대표됐다?
여성정치인으로서 제1야당 대표에 추대된 것은 그만큼 그를 믿는 구석도 있다는 것 아닐까? 추미애(秋美愛;1958~ )는 1995년 8월 27일부터 꼬박 21년 간 정치를 하면서 믿기지 않을 정도의 실수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를 지지한 투표율(54.03%p)을 보면 나머지 두 후보 - 김상곤 후보(22%)와 이종걸 후보(24%) - 의 지지율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으니 그동안 그의 실수를 용서한 것 같다. 참으로 다행한 일 아닌가?
과거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졌을 때 그의 사고(思考)는 어디에 있었을까? 의미심장하지는 않게 짚어본다면, 2003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송금에 대한 특검이 실시되면서 그는 노무현 정부와 거리를 갖게 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누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김대중은 추미애라는 인물을 정치로 끌어들인 정치 아버지 아닌가? 그 아버지 과거 일에, 그 아버지를 등에 업고 대권을 쥔 이가 권력을 이용해서 아버지 밑의 거물들에 대해 특별검사 수사를 한 것에 지나친 오기(傲氣)를 품은 것이 아닌가? 불법을 바로 잡겠다는 것에 항거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핵까지 했으니 당연히 오판의 실수를 저지른 것이었다. 결국 탄핵안 가결 후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그리고 그는 속죄 의미로 '삼보일배'를 했지만, 그해 17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참패하면서 그도 낙선하고 만다. 이로 인해 노 전 대통령 지지층과 씻기 어려운 앙금이 생긴 것이다. 그 악재는 이번 경선에서도 그를 아프게 했다. 그러나 당 대표가 됐다. 문재인과 그 세력이 뒷받침 해준 덕이 맞는가?
1996년 15대 총선의 서울 광진을 지역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17대만 낙선을 하고, 자그마치 5선에 성공한 정치 베테랑이다. 그러나 그는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노동법 개정안 '날치기 통과' 논란에 휘말려 당원권 정지 2개월 처분도 받았다. 추미애는 한나라당 의원들과 단독으로 '노동조합 및 노조관계 조정법 개정안'(추미애 안)을 통과시켜, 노무현 탄핵이후 또다시 논란을 일으켰다.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과 복수노조를 시행해나가고 교섭창구를 단일화 하되 사용자가 동의하는 경우, 산별노조의 교섭권을 보장하는 내용이 든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 문제로 떠올랐다.
1997년 김대중 대선 당시 추미애는 민주당 깃발을 들고 대구로 향했다. 당시 대구 인심은 민주당이 들어갈 틈도 없을 때다. 많은 사람들이 ‘대구에서 민주당 유세는 돌을 맞는다는 말이 떠돌 당시이다. 그러나 그는 마치 잔다르크가 프랑스 샤롤 왕세자를 도와 프랑스-잉글랜드 100년 전쟁에 참여하여 샤롤 7세를 옹립하는 것 같이 대구에 나타나 선거유세에 가담한다. 잔다르크가 프랑스 동레미라는 작은 마을 소작농 딸인 것에 비유하여, 추미애는 대구의 한 작은 세탁소의 둘째 딸이라는 서민적인 향수가 풍긴다. 그는 대구에서 김대중에 대한 명성을 크게 뒤집지는 못했지만 지칠 줄 모르는 선거유세로 ‘추다르크’라는 명칭을 얻었다.
‘잔다르크 유세단’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남편 서성환(61) 변호사라 한다. 혼자서 마이크를 잡고 지역감정과 싸워야 한다는 의미에서 붙인 것이란다.
그는 남녀 간 깊은 사랑도 숙지한 인물인 것으로 드러난다. 남편과 한양대학교 법학과 같은 클래스메이트(Classmate)로 자그마치 7년의 긴 열애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고 한다. 남편 고향은 전북 정읍 출신이다. 고로 ‘대구의 딸, 호남 며느리’라는 별칭이 또 있다. 그는 그 남편과 결혼한 이유에 대해 “그 때는 묻지도 않고 따지도 않고 결혼했던 것 같아요. 생활과 현실은 다르다는 걸 몰랐으니까(웃음)”라는 말로 열애의 결과를 답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 번 먹은 마음은 쉽게 바꾸려하지 않는 것인가?
the300은 보도하고 있다.
추미애는 올해 초 더민주 최고위원회에서 “저는 일생 입당원서라고는 한 번밖에 안 써봤다"며 "호적을 함부로 바꿔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추미애는 DJ와 맺은 인연으로 들어간 민주당에서 당적을 한 번도 바꾼 적 없다.
이는 그의 '소신'과도 맞닿아있다. 추미애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소신을 지켜왔다. 2002년 16대 대선까지만 해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돈독한 관계였던 그는, 2003년 노 전 대통령이 대북송금사건에 대한 특검을 수용하면서 노 전 대통령과 갈라졌다. 노 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DJ를 배신했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이후 추미애는 민주당의 선택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추미애는 당을 버릴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저를 보고 기존 직업까지 버리고 정치에 들어온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당을 바꾸는 일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대신 추미애는 탄핵이 부결된 후 삼보일배를 통해 속죄했다. 선거에서 떨어지고 나서 조용히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온 것도 속죄의 의미에 해당했다.(the300;2016.8.12.)
사람의 마음속에는 오기(傲氣)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능력은 부족하면서도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 또는, 잘난 체하며 방자한 기운을 말한다고 하는데, 이런 기운이 발생하면 거의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아마도 추미애 신임대표가 크게 실수를 한 2003년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과 2009년 노동법 개정안 날치기통과를 할 당시 오기라는 기운에 가로막혀 있지 않았을까 이해를 하려고 해본다. 어찌 사람이 사람을 판단할 수 있겠는가? 그저 우리들도 실수를 하며 사는 것이니 그 실수를 디딤돌로 하여 다시는 실수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도 생각이 나는 것은 공자(孔子)의 말씀 중 자신의 최고 제자였던 안회(顔回)를 두고 “노여운 감정을 남에게 옮기지 않고, 두 번 실수를 하지 않았다[不遷怒 不二過 불천노 불이과]”는 말씀이 스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참고가 된 원문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758659.html?_ns=t1
http://the300.mt.co.kr/newsView.html?no=2016081116567611430
http://news.mk.co.kr/newsRead.php?no=609434&year=2016
http://news.tf.co.kr/read/ptoday/1653485.htm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_w.aspx?CNTN_CD=A0002239028&PAGE_CD=N0004&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top1&CMPT_CD=E0018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0827500074&wlog_sub=svt_006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sid2=269&oid=001&aid=0008645322
'대구의 딸·호남 며느리' 秋다르크, 제1야당 '중심추'로
'희망돼지 엄마'에서 삼보일배까지…굴곡 많은 정치인생 분당·탄핵으로 친노와 대척점 섰다 '정치적 화해' DJ 권유로 입당한지 꼭 21년되는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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