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17일 일요일

이란 제재 해제가 유가폭락

     유가가 연평균 105달러를 치닫고 있을 2013년 당시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주유소에도 1갤런(gallon=3.785리터)당 5달러까지 육박하려 했을 때다. 승용차에 기름을 항상 가득하게 채우려면 거의 100달러가 들어가곤 할 때, 언제 기름 값이 내려갈까 기대하기도 했다. 세상은 한 번 오른 것은 좀처럼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는 세상이니 그저 포기하고 살았다. 그러나 세상은 내 생각대로만 가는 것이 아니다. 기름 값이 내리고 있었다. 세계경기가 둔화하면서 기름을 쓸 일이 없어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한국은 수출이 점차적으로 둔화해지면서 지난해 7.9%p 감소했다고 하며, 중국경기도 하강하고 있다는 뉴스가 연일 이어지며 이젠 유가가 배럴 당 30달러 이하로 떨어졌다고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유소 기름 값도 갤런 당 3달러에서 오가고 있다.


    16일 두바이유는 26.22달러에 거래됐다. 하루 전날에는 12년2개월 만에 최저치인 26.04달러까지 떨어졌고, 서부텍사스 산 원유(WTI) 역시 29.42달러로 30달러가 무너지고 말았다. 자동차에 넣는 주유소 휘발유 값은 올라갔던 비율만큼 떨어지지 않았으나, 세계경제는 요동을 칠 것으로 뉴스는 우려하고 있다. 유가가 떨어지면 산유국들 경제에 미치는 영향으로 그만큼 수입을 할 수 없으니, 그 나라로 수출하던 나라들은 그만큼 수출량이 떨어진다. 결국 기름 값이 떨어진 것만큼 수출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그 비율이 과거와 현재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지는 확실치 않으나 주먹구구로 하더라도 서로가 손해를 보는 것 같다. 원유가가 49달러 이하로 떨어지면 한국도 0.2%p만큼 경제성장을 하는 것으로 계산을 맞춰놓고, 한편 걱정이 되는 것은 수출부진으로 결국 경제성장이 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 물건 값이 떨어진다고 해서 나에게 이득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은 서로 잘 주고받아야 그 삶이 평탄하고 완화해서 잘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만 잘 살 줄 알고 상대 것을 더 뺏으려고 하는 것이 어리석은 인생인 것이다.


    경향신문 뉴스분석에서 ‘이란 제재 해제, 유가 폭락 ‘부채질’…떨고 있는 세계경제‘라는 제하의 글을 읽어 본다.

올해 들어 주요국 증시가 폭락을 거듭하면서 2주 만에 전 세계 증시에서 7조달러가 사라졌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5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직접적인 원인은 국제유가 하락이다. 국제유가의 속락은 산유국들에 경제적 충격을 가하며 세계경제를 깊은 침체의 늪 속으로 끌고 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16일(현지시간)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의 빗장이 풀리면서 유가는 12년 만에 배럴당 20달러대까지 추락했다. 이란이 증산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설 경우 산유국뿐 아니라 세계경제 전체가 ‘치킨게임’에 빠져들 수도 있다. 유가와 주가의 이중폭락 행진으로 세계경제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17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전 세계 증시 시가총액은 지난해 말 64조5656억달러에서 지난 15일 57조6281억달러까지 줄어들었다. 10.7%인 6조9365억달러가 증발한 것이다. 이는 한국의 2014년 국내총생산(GDP)인 1조4103억달러의 약 4.9배에 달한다. 전 세계 시가총액 2위 국가인 중국의 시가총액이 지난해 말 7조919억달러에서 5조5451억달러로 약 21.8% 감소한 것이 시가총액 감소에 큰 영향을 줬다.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신흥국과 최근 유가 하락으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산유국의 시가총액도 함께 떨어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16.29%), 러시아(-15.89%), 사우디아라비아(-15.27%), 아르헨티나(-14.91%), 호주(-13.77%), 노르웨이(-11.53%) 등은 두 자릿수 이상 시가총액이 쪼그라들었다.


전 세계 주요국 증시는 약 3주 만에 베어마켓(약세장)에 진입했다. 베어마켓은 일반적으로 주가지수가 최소 2개월에 걸쳐 전고점 대비 20% 넘게 하락했을 때 선언된다. 상하이종합지수는 12월 고점 대비 20.5% 넘게 떨어져 지난 15일 베어마켓에 진입했다. 이날 범유럽지수인 스톡스유럽600지수도 지난해 4월 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했다. 베어마켓에 진입하면 자신감을 상실한 개인투자자들이 손절매를 위해 ‘팔자’에 나설 가능성이 커 증시가 추가 폭락할 수도 있다.


블룸버그 통신도 추가 자금유출을 경고했다. 올해 들어 주식펀드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210억달러로 중국 증시가 폭락했던 지난해 8월(350억달러)과 유럽 부채위기가 있던 2011년 8월(900억달러)에 못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증시를 끌어내린 원인은 국제유가다. 2013년 연평균 105.25달러였던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는 지난해 50.69달러로 반 토막 났다. 국제유가는 올해 들어서도 30달러대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더니 지난 15일에는 배럴당 29.42달러(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까지 떨어졌다.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가 2012년 이후 4년 만에 해제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추정치 기준으로 이란은 베네수엘라와 사우디아라비아,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석유 매장량이 많았다.(경향신문;2016.1.17.)



    이란 단 한 나라의 경제제재에 따른 국제적인 움직임이 이렇게 큰 영향을 정말 받는다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만은 않을 것으로 본다. 이란이 하루 250만 배럴~350만 배럴 원유를 생산하고 있는 것에 50~100만 배럴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에 국제유가가 요동을 친다는 것은 모호한 점이 많다. 단지 사람의 심리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너나할 것 없이 이란이 경제제재에서 해제되면 기름을 더 생산할 것으로 인정하고 물동량이 늘 것을 대비해서 단 하루 늦게 기름을 사면 쌀 것으로 생각한 나머지 수요 난을 발생시킨 것이 문제일 것으로 본다. 고로 15일 오후 구매한 가격 26.04달러로 살 수 있었던데 반해, 그 다음 하루 늦춰 산 가격은 26.22달러였으니, 이란이의 제재가 해제된 16일에 산 이들은 결국 손해를 본 것이다. 더 내려갈 것으로 생각하여 15일부터 유가가 떨어지고 있었으나 막상 그 당일에는 적잖은 가격이지만 올랐다. 인간의 심리에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인간들은 결국 자신을 속여가면서 살고 있으니 단 하루 사이에 턱없이 비싼 가격으로 살 수도 있고, 싸게 구입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세상살이가 결국 스스로를 속이며 산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싶다.


    세상은 지금 유가하락으로 세계경제가 곤두박질 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여 배럴당 10달러 선까지 하락할 수 있다며 엄살이다. 국제유가가 배럴 당 1달러로 떨어져도 국가 세금 때문에 한국은 리터당 1000원 이하로 떨어지지는 못한다고 한다. 그야 기름을 생산하지 못하는 나라에선 거의 엇비슷하지 않을까싶다. 그보다 유가가 떨어지면 결국 산유국들은 유류생산을 자국의 생산한계까지 늘여야만 하니 가격은 쉽게 오르지 못할 것으로 본다. 또한 중국경기둔화에 따른 신흥국들의 원자재까지 묶이고, 제조업체들의 생산량까지 떨어지고 나면 소비시장위축으로 세계경제가 쉽게 성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단지 후진국을 상대로 하는 경제개발을 돕는 기업들이 나서지 않는다면, 세계경제 전망은 검은 구름 속 아닌가?

    있는 이들은 더 돈을 움켜쥐고 벌벌 떨게 돼 투자는 묶이고, 없는 이들은 추위에 벌벌 떠는 날이 오고 말 것인가! 있고 없고 떨기는 마찬가지일 세상?

출처;경향신문


참고가 된 원문

 

2016년 1월 16일 토요일

대만 첫 여성 총통과 국제사회 변화

     여성상위시대가 오는 것은 여성의 능력이 날로 발전하는 시대상황에 견주어 당연하다고 할 것이지만, 신(God)의 조화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여성의 능력을 이제 신은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가 생성되고 여성이 남성의 권력에 짓눌려 살아온 그 기나긴 세월을 만회라도 할 것 같지 않은가? 그러나 아직도 멀다고 한다. 한국 정치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금도 미미하고 세계적으로도 어림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여성의 정치참여에 적극적으로 변해가고 있은 중이다.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 이사벨 페론 아르헨티나의 대통령(1974 ~ 1976)을 비롯하여, 마거릿 대처 영국의 총리(1979 ~ 1990), 아이슬란드의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 대통령(1980 ~ 1996)에 이어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 아이슬란드의 총리(2009 ~), 그로 할렘 브룬틀란 노르웨이의 총리(1981 ~ 1981, 1986 ~ 1989, 1990 ~ 1996), 메리 로빈슨 아일랜드의 대통령(1990 ~ 1997), 메리 매컬리스 아일랜드의 대통령(1997 ~ 2011) 등 수많은 여성지도자들이 나왔고, 또 나타나고 있다.
    그중 우리 뇌리에 남는 유명 여성지도자도 있다. 마거릿 대처 영국의 총리를 비롯하여, 현재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의 총리(2005 ~)는 우리에게 남겨주는 교훈의 대상도 된다.


    2016년 타이완(대만)은 105년의 대만 역사상 첫 여성 총통을 선출했다. 대만 총통선거에서 차이잉원(蔡英文·59·여) 대만 민진당 주석을 16일 치러진 선거에서 승리를 확정 짓고 8년 만의 정권교체에 성공했다는 뉴스다. 아시아에는 한국의 박근혜와 다르게, 미얀마의 민주화상징인 아웅산 수치(71) 여사가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25년 만에 치러진 민주 총선에서 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승리를 이끌어 군부 지배를 종식시키고 '미얀마의 봄'을 연 여성도 나왔다.
    대만의 차이잉원은 소수민족 가정 출신으로 정치경력이 11년에 불과하다는 핸디캡을 안고 있었다. 그는 '친중' 성향의 정책을 펴온 국민당 정권을 누르고 당선됐다. 이번 대만의 민주진보당(민진당)이 8년 만의 정권탈환을 실현한 원동력은 대만의 침체된 경제 때문이었다. 대만 선거전에서 양안정책(중국과 대만 간의 친화정책)이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대만 청년들의 분노는 지난 8년간의 마잉주(馬英九) 정부 시절의 친중정책에서 대중국 경제종속 심화로 10년째 실질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고 민생경제가 피폐해진 이유가 유권자들이 국민당에 등을 돌린 거다.


   연합뉴스는 “양안관계 경색에 따른 안보 위기의 가능성에도 대만인들이 압도적인 표차로 차이잉원(蔡英文) 민진당 주석에게 힘을 실어준 데는 경제살리기에 나서달라는 대만인들의 염원이 반영됐다.”고 하며 “최근 블룸버그가 세계 95개국의 올해 경기침체 확률을 조사한 결과 대만은 55%로 브라질, 러시아,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에 이어 5번째로 경기침체 위험이 큰 국가로 꼽혔다.”고 보도하고 있다.

   또한 2008년 시작된 국민당의 마잉주 정부는 취임 후 곧바로 양안회담을 가동하는 등 친중 정책으로 천수이볜(陳水扁=민진당) 전 총통 시절 소원해진 양안관계를 빠르게 회복시키고 있었다. 그는 2010년 6월 중국과 관세 감면과 서비스업 시장 개방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해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후광을 입을 것이라는 기대를 불어넣고 있었으나 실패의 원인이 된 것이다. 이제 대만은 변화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지난 8년간 마앙주정부가 장악하여 이끌어온 양안 경제체제의 ‘차이완(Chiwan) 시대’를 쉽게 마감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는 눈이 크다. 중국에 진출해 있는 기업과 산업공동화에 밀려온 대만의 경제를 차이잉원이 쉽게 일단락 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과거와는 다르게 중국과 소원해지며, 친미와 친영으로 이어갈 것으로 내다보지 않을 수 없다.

    차이잉원은 아버지의 권유로 대만 제일의 대만법대를 졸업하고, 1980년 미국 코넬대에서 법학석사를 받고, 84년 영국의 런던정경대(LSE)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은 학력이 그의 주 외교무대로 될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물론 친미성향에 따라 일본과 근접한 외교를 펼칠 것 또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차이잉원은 이번 선거에서 역대총선 중 가장 큰 두각을 나타냈다는 점에서 그의 행보가 각별하지 않을까싶다. 총 689만표를 득표한 차이 후보는 국민당의 주리룬(朱立倫) 후보와 308만표 이상의 차이로 압승을 거뒀다는 점에서도 대만의 위기를 우리는 읽을 수 있다. 대만 대선의 1, 2위 득표자 간의 표차는 2000년 31만 표, 2004년 2만 5천 표, 2008년 민진당 천수이볜의 부패정치가 참패원인으로 221만 표의 격차가 있었고, 2012년 79만 표 차이였다. 2008년 대선에서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거뒀던 221만 표 차의 대승도 뛰어넘는 수치다.
    민진당은 이날 총통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입법원 선거에서도 전체 의석의 60.1%를 차지하는 압승했다.
    차이잉원의 내실과 같이 대만의 정치에 변화가 올 것만은 틀리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중국의 경기둔화의 영향에서 대만도 쉽게 벗어날 수만 없을 것이다. 또한 중국도 과거와 다르게 변화할 것이다.


    북한 4차 핵실험에 따른 중국의 변화가 크게 다르지 않듯 중국은 대만의 차이잉원 정부와도 크게 작용하지만 않을 것으로 본다. 단지 한미일 3국이 쉴 사이 없이 오가며 중국과 북한을 저울질하는 외교가 이어질 것 아닌가?
연합뉴스는 “한미일 3개국은 16일 북한의 제4차 핵실험에 대해 "철저하고 포괄적인 대응"을 통해 실질적인 대북 제재 조치를 시급히 취해야 한다는데 합의했다.”고 한다. 또한 “북한에 대한 최대의 영향력을 보유한 중국이 강력한 대북 제재에 동참할 것을 함께 촉구했다.”는 보도이다.

    한국은 중국과 그동안 쌓아온 외교력이 아까워 쉽게 중국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 미국과 일본은 한국이 중국과 소원해지길 거듭 강조하며 압박하고 나올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들과 같은 처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잊어서는 안 될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의 핵을 국제사회에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중국의 태도를 볼 때 우리가 한미일 3국 동맹의 의지만으로 고집할 수 있는가? 벌써 북한이 4번째 핵실험을 했다는 것을 무시하고, 북한은 핵실험을 안 했다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를 것인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 강력하게 버틴다면,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다독여야 하지 않을까? 왜 과거 핵보유국들은 핵을 전체 폐기하지 않으면서 신흥국만 핵을 생산해서는 안 된다고 우길 것인가? 아니면 한미일 셋이 모여 왕따라도 시키면 만들어진 핵이 없어질 것인가?

    대만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두고 북한과 중국은 크게 변화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렇게 큰 관심의 대상이 될 것도 없다. 단지 중국만 대만 자금줄이 덜 들어 올 것에 대항하려고 할 뿐이다. 잘 못하면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떨어지면서 더 많은 고통이 한 동안 지속될 수 있을 것도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대만의 차이잉원 정부, 이웃에 새 집이 이사를 온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차이잉원(출처 연합뉴스)

  참고가 된 원문




2016년 1월 15일 금요일

무학소주 갑질 긍정할 만하다

     대기업 회장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긍정한다. 그러나 높이 올라 선 것만큼 체통을 지켜야 할 일이다. 회장이 되기 쉽지 않은 것 같이 아랫사람에게 모범도 보여야 할 것으로 본다. 더구나 그 수하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한을 품게 한다면 윗사람으로서 할 짓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아무리 윗사람이 잘 해 준다고 해도 밑에서 거드는 사람들이 불평을 한다면 서로가 불편한 것이다. 반대로 윗사람이 불편하다면 그 즉시 아랫사람을 갈아치우지 않은가? 서로가 마음으로 해결이 안 되는 사안이 있다면 의사소통을 해야 할 일이고, 만일 아랫사람이 흡족하지 못하다면, 최소한의 금전을 이용해서 그 불편함을 해소시켜주어야 한다고 본다. 노력의 대가만큼 아랫사람이 받지 못하게 되면 불평이 튀어나가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돈은 충분히 닫았지만 불평이 있다면 아랫사람의 인간 됨됨이도 문제가 있다할 것이다. 그도 아니면 윗사람의 인격이 문제 아닐까?


    우리사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보듬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권력이든 금전이든 명예든 힘이 있는 이들이 보듬지 못하면 사회는 안정될 수 없다. 있는 이들과 여유가 있고 능력이 좋은 이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을 감싸주지 않으면 누가 고된 세상을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인가? 좋은 능력은 스스로 개발도 한다지만, 하늘에서 점지해 줄 때가 더 많다고 본다. 아니면 부모를 잘 만난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야 하니 돈을 많이 쥔 자들이 권력이 있기 마련이다. 그 권력을 이용해서 없는 이들에게 핀잔이나 주고 힐난한다면 사회는 쉽게 병드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국민은 세금이라는 돈을 주면서 도와달라며 정부와 지자체에 의지하고, 사법부의 판결을 받고, 그 법을 제정하는 국회를 믿고 사는 것 아닌가? 그런데 사회는 시시때때로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갖은 자가 없는 자들의 것을 강탈하고 그 권력으로 인권까지 짓밟아도 할 말을 잃고 사는 이들이 너무나 많지 않은가! 자가용 운전자는 주인에게 머리를 굽신거려야 하고 문까지 열어줘야 차에서 내리는 세상이다. 주인이 문을 열 수 없는 장애인이라면 거들어 줘야 마땅하다. 하지만 아무 장애도 없는 주인이 체통을 지켜야 한다며 문 열어 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갑질 중 갑질 아닌가? 그 문 열어주는 돈을 지불했으니 당연하다는 것인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이따금 TV드라마에서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역겨워 하던 생각이다.


    무학소주 최재호 회장 운전기사 A씨가 오마이뉴스에 불평을 늘어놓았다. 분명 TV드라마와 같은 상태였다면 사단이 날만하다고 본다. 그런데 그보다 더한 것 같다.
    A씨는 "수행기사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라고 하면서 심지어 "세상에 미련이 없다"라며 긴 한숨을 토해냈다는 보도이다.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하는 말일까? 그런데 회장을 대변해서 유광형 마케팅팀 차장은 "수당을 미지급한 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나중에) 전부 다 지급됐다"라며 "그 친구가 주장하는 것이 일리도 있지만 억지가 좀 있다"라고 사실과 다르다며 온전히 이해치 않을 답변을 하고 있다.

    분명 A씨는 출근한 첫날인 2014년 4월 1일(차량운행일지 기준) 오전 8시 30분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1시 45분에 퇴근했다. 4월 2일에도 8시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1시에 퇴근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면접관들은 "주말근무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지만, 그는 한달에 평균 3일밖에 쉬지 못했다. 4월과 5월에는 각각 하루와 이틀만 쉬고 최 회장을 수행했다."고 하며 자기가 쉬어야만 했던 부모님 제삿날에도 근무를 해야만 했다고 한다. 아침 8시 출근해서 새로 한 시에 일이 끝났다면 집에 오갈 시간까지 빼버리면 잠 잘 시간은 얼마냐? 회장기시이니 깨끗이 씻고 잘 다듬어야 할 시간도 공제해야 할 것 아닌가? 그렇게 하고도 운전은 잘해야 할 것 아닌가? 세상 참 야박하지 않는가?
더해서 최 회장 서울 자택의 쓰레기 분리수거도 해야 했고, 애견센터도 가야만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 뿐인가? 최재호 회장의 욕설은 다반사였으며 출근 첫날부터 폭언했고 얘기할 때 '야 인마', '야 새끼야'라 하고 "술에 취했을 때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쌍욕을 퍼부었다"고 주장한다.

    A씨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골프장클럽 하우스에서 '이 새끼가 정신나간 새끼네'라고 욕하기도 했다"라며 "듣고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경상도 사투리로 욕했다"라고 전했다. 그는 최 회장으로부터 "니네들은 인생의 패배자들이다, 니들이 못났으니까 운전기사나 하고 있다, 잘나고 성공했으면 내 밑에서 운전기사 하겠냐?"라는 모멸적인 훈시까지 들어야 했다고 한다.




    무학소주! 1929년부터 그 뿌리는 깊다.
    소화주류공업사로 일제강점기부터다. 소화주류공업사는 해방 이후인 1946년 무학양조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 당시 주류 회사에 대한 규제가 없어 전국 각지 소주와 막걸리 등 양조장은 산재했다.
    최재호 회장의 아버지 최위승 명예회장이 1965년 이 무학양조장를 인수한 것으로 나온다. 이때부터 무학양조장은 본격적인 생산 설비를 갖추고 희석식 소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박정희 유신시대인 1973년 정부는 소주시장의 과다경쟁과 품질 저하를 막기 위해 한 도청소재지에 한 개 소주 업체만을 허용하는 이른바 ‘1도 1사’ 원칙을 발표했고, 이때 무학양조장이 경남지역의 36개 소주 업체를 통합하여 무학주조(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또 정부는 1976년부터 주류 도매상들이 전체 소주 구입량의 50% 이상을 그 지역의 소주 업체에서 구매하도록 하는 ‘자도주 구입제도’를 실시했다.
    이 제도로 무학이 경남 지역을 대표하는 업체가 됐고, 진로가 서울 및 수도권을 장악하고, 대선(부산), 금복주(대구 경북), 보해(전남 광주), 보배(전북), 선양(대전 충남), 한라산(제주), 경월(강원) 등 지역을 대표하는 소주 업체들이 주도했다. 자도주 제도는 1996년 김영삼 정부에 들어와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폐지되고 만다.


    무학주조는 1991년 위스키 제우스를, 1992년 매실주인 매화를 각각 출시했다. 1993년 23도 소주인 무학화이트를 시중에 선보였다. 1996년에는 화이트 소주 판매가 1억 병을 넘어섰다. 1998년 회사 이름을 (주)무학으로 바꿨고 이 해에 주식을 코스닥시장에 등록한 이후 매년 100억 원 이상 흑자를 이어왔으며 현금배당도 실시, 시장에서 알짜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7년에는 19.9도 소주인 ‘더좋은데이’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2010년 주식을 코스닥시장에서 증권거래소로 옮겨 다시 상장했다.
    2010년 9월 현재 최대주주는 최위승 명예회장의 아들인 최재호 회장이며 보유 지분은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50.47%p라 한다.
    2015년 과일소주 열풍과 함께 "좋은데이" 컬러시리즈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수도권 진출에 성공하면서 이로 인해 2015년에는 회사 창립 이래 최초로 가장 많은 157명을 채용하기도 했다.


    다음은 무학이 생산해내는 상표이다.
화이트 소주
빅소주(패트병 소주)
화이트PET(패트병 소주)
좋은데이(소주)
좋다카이(소주)
매실마을(매실주)
가을국화(국화주)
해오름(복분자술)
무학포도주
스파클링 와인(청포도)
페스티발(와인)
오스카(와인)
티나(무알콜 샴페인)


    매년 매출액 1조 원상당의 기업으로서 2012년 최위승 명예회장은 자신의 고향 고성에 2억1천5백만 원을 내놓고 사진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것 같다.
    지지리도 고생을 하다 성공한 최위승 명예회장과 그 아들 최재호 회장의 차이점이 있다면 아버지는 고생을 해서 성공하여 회장이 됐고, 그 아들은 아버지 잘 만나 고생 없이 회장에 올랐다는 것이 전부일까? 아버지 잘 만난 그 아들을 태우고 다니던 운전기사가 무학의 갑질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세상에는 무학소주 회장 쵀재호의 A기사만 불평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갑질을 당하는 모든 이들은 언제든 세상에 알려 사회를 정화하는데 한 몫을 해야 후일 후배일꾼들이 곧게 성장할 것 아닌가싶다. 사회가 곧아야 굳건하게 국가가 성장할 것 아닌가?
 




  왼쪽이 최위승 명예회장




  참고가 된 원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75609&PAGE_CD=N0004&CMPT_CD=E0018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51699&cid=43167&categoryId=43167
https://ko.wikipedia.org/wiki/%EB%AC%B4%ED%95%99_(%EA%B8%B0%EC%97%85)
http://www.gooddaynews.co.kr/detail.php?number=6106&thread=07

2016년 1월 14일 목요일

김종인 더민주당 선대위원장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했다. 하지만 만일 죄가 있다면 그 죄는 그 본인이 더 잘 알 것으로 본다. 2011년 12월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축할 당시 비상대책위원으로 김종인 전 의원이 발탁될 때, 전여옥 의원은 본인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김종인 전 수석, 1993년 안영모 당시 동화은행장에게 2억1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 돼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고 하며 "당시 김종인 의원은 '공직 생활을 하면서 단 한 건도 이권에 개입한 사실이 없다'고 했지만 대법원은 유죄를 확정했다"고 문제를 제기한 사실이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두고 과거 민정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특정계파에 서지 않으면서도 ‘김영삼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파격을 보여 이후 김영삼 정부 때 표적사정의 대상이 되었다는 의견도 있으며, 개인 비리가 아닌 정권의 정치 자금을 받은 것인데, 당시 '특정인'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본인이 뒤집어썼다는 의견도 있다고 <위키백과>는 적고 있다.

    김종인(76) 더불어민주당(더민주) 선대위원장(선대위장)은, 일본제국(일제) 강제점령기(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들과 농민, 노동자들을 변호하며 법정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는 김병로(金炳魯; 1887.12.15(음)〜1964.1.13)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의 친손자로 알려지고 있다. 김병로 대법원장은 광복 이후에도 좌·우파를 포용하고 독재 정치를 비판하면서, 할 말을 하고 할 일을 다 하는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네이버캐스트는 적고 있다.


    김종인 더민주 선대위원장은 2012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면서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를 재조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자는 투표이후 경제민주화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기 시작하면서 김종인을 내몰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본시 박근혜는 경제민주화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야권과 민주당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공약이 나와 세력이 야권으로 몰리고 있자, 새누리당의 박근혜는 김종인 전 의원을 영입하고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로 국민을 호도하기 시작했다.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의 빈 공약의 포장을 김종인 당시 위원장은 속고 있었던 것 아닌가싶다.
     원래 김종인은 전두환 정권 당시 민주정의당 국회의원으로서 1987년 제9차 헌법개정 때 헌법 119조 2항, 경제민주화 항목을 요구하여 관철시켰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박찬종 전 의원은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경제 민주화는 이미 야당의 초안에 담겨 있었다. 여당인 민정당의 반대를 꺾고 관철시켰다. 여당 의원인 김종인이 한 일을 우리는 모른다"고 주장했다고 위키백과는 적었다. 김종인이 1987년 헌법상의 경제민주화 조항을 관철시킨 사람인지 아닌지에 관하여 논란이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 이전 그는 본시 경제학자이다.

    그의 학력을 보면,
1959년 중앙고등학교 졸업
1964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학 학사
1969년 뮌스터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1972년 뮌스터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로 됐고,
    그의 경력 시작도 1973.03~1988.02 서강대학교 경제학 교수부터다.


    분명 경제학에 깊은 학식과 경력의 소유자임이 틀리지 않을 것으로 본다. 새누리당은 그의 학문과 실력을 이용하고 토사구팽(兎死狗烹)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재벌기업을 정화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가 바로 설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한 것인데, 박근혜가 경제민주화를 할 수 있다고 본 것인가? 국민도 속았다.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군부독재자는 누구인가? ‘정경유착’의 창시자이다. 정치인과 경제인이 서로 필요한 돈과 정보를 주고 받으며 서로를 의지하고 비리정치를 유발시켜야 정치를 끌고 가는 것으로만 알고 있는데 어떻게 경제인들을 씻어내며 해부할 수 있을 것인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 국민인 것이다.

    1970년대 남서울(강남)이 개발된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많이 파악하고 있다. 고로 강남조차 도시계획이 잘 못 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한탄하는 이들이 얼마인가? 가까이 있어야 할 공공건물들이 제멋대로 퍼져있어 시민의 발길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고 교통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허허벌판을 개발하면서 기업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건물을 올리다보니 지금 시민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물론 땅값만 수백 배로 올랐지만 유용한 지역으로 하기에는 모자란다는 것이다. 왜? 당시 정치인들이 돈에 노예가 됐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재벌들만 배가 불러터지고 서민들의 삶은 바닥이 된 것 아닌가? 그걸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보겠다는 것이 김종인 더민주 선대위원장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박근혜는 보기 좋게 내팽개치고 말았다.

     박근혜가 내던진 그 냉대를 되갚을 수 있을까? 좋은 인재를 함부로 버렸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벌써부터 많은 네티즌들이 야권에서 김종인 부활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응원부대가 크다. 그는 꼭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기대해본다.

     그 할아버지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사고가 좌·우 세력을 품고 같이 한 것 같이 김종인 더민주 선대위장도 20대 총선에서 민주주의 꽃이 골고루 필 수 있게 도와 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국민을 위해서라도 꼭 야권이 단합되는 것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며 환영하는 바이다. 비리로 점철된 의원들은 골라내고 새로운 인제들을 영입해서 민주주의가 원활하게 자리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이어서 19대 대선에서 권력을 바꿔 경제민주화 꽃까지 피워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전두한 정권당시 경제민주화란 가당찮은 사안이었을 것이 빤하다. 하지만 그 뜻을 지니고 지금까지 버틴 것 또한 대단하다. 기왕 나간 길 더 곧게 이어 경제민주화까지 활짝 필 수 있게 되기 바란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조기선대위원장으로 김종인(76) 건국대 석좌교수를 영입했다. 김 전 의원은 한때 박
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교사로 잘 알려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참고가 된 원문


 

2016년 1월 13일 수요일

朴의 신년기자회견 섬뜩하다

     2016년 1월 13일 朴은 신년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했다.
    경향신문은 분석하기를 ‘북핵은 “중국이 나서달라”는 논리이고, 경제는 “국민이 나서달라”는 논리로 풀었다.
朴은 “북한의 태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정도의 새로운 제재가 포함된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또한 “앞으로 중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필요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고도했다. 더해서 “정부는 유엔 안보리 차원뿐 아니라, 양자 및 다자적 차원에서 북한이 뼈아프게 느낄 수 있는 실효적인 제재 조치를 취해 나가기 위해 미국 등 우방국들과 긴밀히 협력해 나가고 있다”고도했다. 개성공단 폐쇄 여부는 “추가 조치를 할 필요가 있는지는 북한에 달려 있다”고 북한에 맡기고 있다.
    당연할 것이다. 북한의 숨통을 쥐고 있는 중국도 북한 눈치만 보고 있는데 박근혜정권이 할 일은 없을 것으로 미룬다. 그저 국민 눈치 살피느라 동분서주(東奔西走)하는 것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을 뿐일 것이다. 그래도 콘크리트(concrete) 지지율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미룬다. 왜냐하면 새누리당 안엔 그만한 인물이 없었으니까.


    노컷뉴스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따끈따끈한' 소신을 드러냈다.”고 하며 “박 대통령이 이날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편향'이란 키워드를 강조한 것도 아이러니하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보도하고 있다.

朴은 "국정화를 반대하는 쪽에서 이런 저런 비판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아이들이 지금 배우고 있는 역사교과서가 편향된 이념을 가진 집필진에 의해 독과점 형태로 비정상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라했다. 또한 "검정 체제 하에서 어떻게 해보려고 시정을 요구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소송까지 벌이면서 무시해 지금은 국정화로 갈 수밖에 없다"고도했다.

    하지만 노컷뉴스는 '아이들이 지금 배우고 있는 역사교과서'와 달리, 박 대통령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 국정 교과서는 오히려 더욱 편향되고 독점적일 수밖에 없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고 보도한다.



    朴은 '보육대란' 우려를 낳고 있는 누리과정 예산 갈등과 관련, 편성을 거부하고 있는 7개 시도 교육감에 대해 "정치적이고 비교육적 행태"라며 직설적으로 비난하면서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누리과정은 꼭 필요한데, 아이들을 볼모로 잡고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정치적 공격수단으로 삼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특히 "작년까지 교부금으로 잘 지원했던 누리과정을 이제 와서 거부하고 있다"면서 "법을 고쳐 중앙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해도 좋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되려 반문하고 있다.

    하지만 3~5세 누리과정은 2012년 18대 대선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자가 언급한 무상보육 프로그램의 대선 공약이다. 지난 2012년 12월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을 확충하고, 아이 기르는 비용도 국가에서 적극 지원하겠다. 0∼5세 보육은 국가가 책임지도록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사업이다.

​    노컷뉴스는 “굳이 법을 고치지 않더라도 이미 누리과정 예산은 중앙정부가 직접 지원하도록 돼있다는 게 일선 교육청들의 얘기다.”며 “그런데도 정부가 지난해 10월 하위체계인 시행령을 바꿔, 누리과정 예산을 '의무지출경비'로 못박아 교육청에 떠넘기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는 3년 전 대통령이 되기 위해 공약을 남발했다는 증거이다.


    朴은 또 이날 담화에서 서울시의 '청년수당', 성남시의 '무상교복'이나 '공공 산후조리' '청년배당' 등 지자체의 각종 복지정책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고 한다. 박은 자신은 공약을 남발한 거짓증언자이면서도 이번 20대 총선을 겨냥하여 "선거를 앞두고 이런 선심성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 겁난다"며 "정부도 이런 선심성 정책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왜 안하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며 핀잔하고 있다. 더해서 "지자체가 이런 식으로 감당할 수 없는 선심성 사업을 마구잡이로 하면 최종 부담이 국가적 재정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강조했다는 뉴스를 본다.

    지자체는 정부 소관이 아니라는 것인가? 지자체는 다른 나라 일이란 말인가? 할 말을 잊게 만들고 있다. 더 이상 朴의 사고를 고찰(考察)할 필요가 있겠는가?
    우리나라일은 중국에 미루고 자신이 언급한 말을 되돌려 지자체장을 힐난하고, 경제는 국민이 알아서 하라고? 박근혜정권이 할 일은 무엇이 있나? 그저 명령이나 할 것인가?


    기자회견 중 朴은 “국회 기능을 바로 잡겠다”고 하기도 하며 “국회의 수준이 어떻게 법을 바꿔도 동물국회 아니면 식물국회가 될 수밖에 없는 수준밖에 안 되느냐는 거죠.”라는 말로 국회를 비하해야 직성이 풀리는가? ‘당리당략’, ‘사리사욕’ 등의 표현을 써가며 자신의 의견들이 국회에서 관철되지 않은 것을 핀잔과 힐난으로 대응해야 할 것인가? 자신이 낸 의견 중 무엇이 상대를 거스르게 했는지, 원천적인 것을 파악하고 분석을 하지 않는다면 나머지 기간 내내 가시방석을 깔고 앉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싶다. 그래도 초등학생이 기자회견 한 것 보다야 낫지 않았는가? 그저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아가야 할 것 아닌가?
    비판과 힐난 그리고 핀잔의 말만 쏟아내며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말을 들으니 걱정되기도 하고 이젠 섬뜩하기도 하다?
 




13일 오전 7시께 경기 파주시 광탄면, 의정부시 호원동 등에서 대량 발견된 북한이 보낸 대남전단지 /


  참고가 된 원문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113_0013834529&cID=10301&pID=10300
http://www.hankookilbo.com/v/0d838d6c569d45e3938f3b801a5fbb21

2016년 1월 12일 화요일

중국 시진핑이 더 고민이 깊다?

     2016년 새해 벽두(劈頭)부터 한반도에 스산한 전율이 일고 있었다. 박근혜정권에게 닥쳐올 것이 온 것인가? 끝내 국민에게 호된 경고를 던진 북한이다. 말이 북한수소탄실험이지 그 폭탄이 한반도에 떨어진다면 반쪽이 날아갈 만한 위력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직감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정권은 물론 국제사회에서조차 엉성한 반응만 있을 뿐 대항할만한 세력이 없어 보인다. 말로만 한·미·일 3국 동맹이지 북한 핵실험이 3차(2013)까지 올 때도 무엇을 했는지 남아있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북한이 1차(2006) 핵실험을 하고 세계는 심한 경기(驚氣=어린아이가 놀라서 몸이 비틀리는 증세)를 보이는 듯싶더니 이내 가라앉았다. 2차(2009) 때도 그랬다. 3차에서도 UN은 북한 제재수위를 높인다고 했지만, 높여진 것이라고 하기에는 북한이 너무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4차에는 수소탄실험이라고, 백만 배 이상으로 세상을 거머쥐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정권은 감히 손도 못 대고 그저 북한 주위만 뱅글뱅글 돌고 있을 뿐 결코 해낼 것이라고는 없을 것만 같다. 당연하다. 그 능력으로는 가당찮기 때문이다. 미국인들 할 수 있다고 보는가?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제3국에 제재)? 미국이 할 수 있었으면 처음부터 했지! 어림도 없다고 보지 않는가? 단지 중국뿐이다.


    그런데 중국이 할 수 있을까? 어림도 없다. 왜? 그동안 ‘북한의 중국창고’에 쌓아둔 것들이 얼마인데 중국이 북한을 제재를 할 수 있다고 보는가? 만일 북한을 중국이 제재한다면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단연 미국에게 동조하는 꼴이 되는데 중국이 할 수 있다고 보는가? 말도 되지 않는다. 그저 어쩔 수 없으니 박정권이 이리저리 뛰고 있을 뿐이다. 북한은 6자회담을 거부한지 오래건만, 6자회담 한국 수석대표인 황준국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3일 서울에서 한·미·일 3국 수석대표 협의를 하고, 14일엔 베이징에서 중국 쪽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 만난다고 한다. 19일엔 모스크바로 가서 러시아 쪽 수석대표인 이고리 모르굴로프 외교차관과 양자 회동할 예정이다. 단지 북한만 제외한 5자 수석대표가 연쇄 회동하는 격인데 어쩌자는 것인가? 좋은 성과가 있었으면 한다. 하지만 무엇이든 바랄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이 손을 쓰지 않는 한 아무 효과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가는 90%p 오일(oil)만 끊어준다면 간단히 해결될 사안이다. 기름만이 아닌 북한의 숨통을 쥔 중국이다. 하지만 중국이 절대 끊을 수 없는 처지다. 고로 시진핑(習近平)이 朴과 전화연결도 시키지 말라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 개통한 한·중 국방장관 간 군사 핫라인도 6일부터 일주일동안 먹통이다. 박근혜가 미국 오바마회동은 4번을 했지만 시진핑과 6차례나 만났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남아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단지 과거일 뿐이다. 지난해 중국 전승절 행사에 서방지도자 대부분이 불참했지만, 朴은 참석해 시 주석과 함께 열병식을 참관하고도 빛바랜 상태이다. 왜? 북한에 중국이 판을 벌려 논 것보다 우리판은 조족지혈(鳥足之血=새 발의 피)이기 때문이다.
만일 북한을 제재한다면 그 혜택은 고스란히 미국으로 돌아가고 만다. 중국이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중국도 호랑이새끼를 길렀다고 땅을 치고 있는 중이다.


    북한과 중국 관계를 보면 1949년에 수교이후, 중국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중국 인민의용군을 북한에 파병하고 수많은 중국인의 피를 북한 땅에 뿌렸다. 1953년에는 김일성이 중국을 방문하여, 경제·문화협조 및 지원 협정을 체결하였다. 1954년 북한과 중국 양자 간 총 교역액은 약 8,000만 달러로, 중국 총 교역액의 약 3.4%에 불과했다. 그러나 1958년에는 중요물자 공급 협정 및 차관제공 협정을 체결한다.
    1960년대~1970년대 중국과 소련이 갈등을 겪던 당시 중국과 소련은 서로 북한을 자기편으로 하려고 했다. 고로 1961년 7월에 김일성이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 ‘북·중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다. 1961년 11월에는 통상 및 항해조약을 체결한다. 1971년 9월에는 무상 군사원조(대략 3억~4억 달러) 협정을 체결했고, 1973년 6월에는 경제기술협조 협정을 체결한다. 그야말로 아버지와 아들나라가 된다고 했다. 또한 1963년 9월에는 류샤오치(劉少奇) 국가 주석이 북한을 방문, 1975년 4월에는 김일성이 중국을 방문, 1978년 5월에는 화궈펑(華國鋒) 당주석 겸 총리가 북한을 방문했다. 1978년 8월에는 중국의 군사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하여 친선을 도모한다.


    1970년대 말부터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 정치·외교·안보 분야에서 북한을 지지 협력함으로써 소련과 미국으로부터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시도를 한다. 1984년 북한의 3자회담 제의를 지지하고, 국제연합(UN, United Nations) 등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입지를 지지한다. 이 당시 북·중 최고지도자들 간 교류가 빈번하며, 김일성은 1982년, 1984년, 1991년에 중국을 방문했고, 펑전(彭眞) 전국인민대표대회(全國人民代表大會) 상무위원장이 1983년에 북한을 방문하였으며, 양상쿤(楊尙昆) 국가 주석이 1988년과 1992년에 북한을 방문했다. 또한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는 1989년에 북한방문, 장쩌민(江澤民) 총서기는 1990년에 북한을 방문했고, 리펑(李鵬) 총리가 1991년에 북한을 방문했다.
    하지만 경제 등 실질 분야에서는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서방세계와의 실리적 관계가 강화됨에 따라 북한 관계가 조금 멀어진다. 1990년 한·중 간 직교역 총액이 19억 달러로 전년 대비 117%p 증가한 데 비해, 북·중 간 교역액은 4억 8,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3%p 하락하기 시작한다.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안정된 주변 환경을 구축하면서, 북한의 급격한 몰락에 미국의 대(對)북 영향력 확대를 견제한다는 전략 하에 북한과의 관계는 정립하고 있었다. 고로 한·중 수교 이전, 북·중은 제반 측면에서 여타국보다 특별한 관계를 지속한 것이다. 중국은 북한과의 전통적 우호·협력 관계를 거듭 강조하며 북한체제유지를 지원하고 있었다. 양측은 공산당(노동당)은 물론 외교부간 대표단의 연례적 교환 방문 등 매년 당, 정, 군 사이에 상호방문을 지속적으로 실시했다.

   그러나 1992년 8월 한·중 수교 이후 북·중 관계가 전반적으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한다. 구소련의 냉전종식에 따라 군사적 동맹의식이 서서히 벗어나며,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펼침에 따른 이념적 결속력도 약화된다. 한·중관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북한의 대(對)중 신뢰감은 저하된다. 게다가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 류샤오치(劉少奇), 장첸(張震), 북한의 김일성, 최광, 김광진 등 양측 혁명세력들이 사망 또는 퇴진에 따라 지도층 간 유대감도 약화된다. 또한 1997년 황장엽 사건 및 타이완[臺灣] 핵폐기물의 북한 반입시도와 관련하여 북·중 간 갈등을 겪는다. 결국 1997년 8월 이후 개최해 온 4자회담 예비회담과 본회담 등에서 북한은 중국을 배제하려 시도했고, 중국과의 실질협의를 회피하여 북·중 간 불협화음이 드러난다. 이에 따라 양측 간 주요 인사의 교류가 줄어들게 된다.


    1998년 9월에 북한의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한 이후, 양측 간 고위인사 교류를 복원함으로써 관계가 회복된다. 1999년 6월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중국방문, 1999년 10월에는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부장이 북한방문, 2000년 3월에는 백남순 북한 외무상이 중국을 방문했다. 2000년 5월과 2001년 1월에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고, 2001년 9월에 장쩌민(江澤民) 국가 주석이 북한을 방문, 양국 관계가 회복한다. 2003년 10월에는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全國人民代表大會) 상무위원장이 북한을 방문한다.

    또한, 2004년 4월 김정일의 중국 방문과 북·중 수교(1949년 10월 6일) 55주년을 계기로 양국 간 친선·실무 대표단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교역 및 경제협력도 대폭 증가한다. 수교 55주년을 계기로 2004년 9월에 리창춘(李長春) 중국 당정치국 상무위원이 북한을 방문하고, 2004년 10월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다. 이로써 양국은 친선관계 및 협력강화 방침을 재천명한다.
    양측은 2005년 들어 당·정 교류가 활발하였는데, 2005년 2월에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북한을 방문했고, 2005년 3월에 박봉주 북한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2005년 7월에는 탕자쉬안 국무위원이 북한을 방문했으며, 2005년 10월에는 우이(吳儀) 중국 부총리가 북한을 방문한다. 특히, 2005년 10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방북이 북·중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대외적으로 과시한다.


    2006년 7월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고, 2006년 10월에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한 이후, 북한이 일방적으로 상황을 악화시켜 중국은 최초 대(對)북 비난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찬성을 했다. 결국 북·중 관계는 원활할 수 없었다. 중국이 기른 호랑이새끼를 최초로 세계시장에서 발로 걷어찬 겪이다.
    그러나 2007년 2월 13일 제5차 6자회담[베이징(北京) 개최]에서 북한이 핵 비확산에 합의한 이후, 2007년 7월 양제츠(楊潔篪) 중국 외교부장의 방북, 2007년 10월 류윈샨(劉雲山) 중국 공산당 선전부장의 방북 등을 통해 양국 정치관계가 정상화된다.

    2008년 이후에는 양국 간 공산당, 외교부 및 부총리급 이상 고위급 지도자의 교류가 빈번해진다. 2008년 1월에는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북한을 방문했고, 2008년 3월에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주 북한 중국 대사관을 방문한다. 2008년 4월에는 박의춘 북한 외무상이 중국을 방문하였고, 2008년 6월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이 북한을 방문했으며, 2008년 8월에는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베이징 올림픽(Olympic) 개막식에 참석했다.
    2009년 ‘북한·중국 우호의 해’ 개막식에는 김영일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여 참석하고, 폐회식에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북한을 방문하여 참석하였다. 아울러 중국의 다이빙궈(戴秉國) 국무위원, 량광례(梁光烈) 국방부장 등도 북한을 방문하였으며, 북한의 최태복 서기, 김정각 국방위원, 주상성 인민보안상 등도 중국을 방문하였다.

    그러나 호랑이새끼는 2009년 4월에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고, 2009년 5월에 제2차 핵실험을 했다. 양국 간에 다소 소원한 조짐이 나타나기는 했으나 2009년 10월 원자바오 총리가 북한을 방문한 것을 기점으로 양국 간의 전통적인 우호 협력관계가 쉽게 회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압록강 신교 건설, 중국의 창지투(長吉圖) 개발 계획 추진 등을 통해 북·중 간 경제개발 협력이 모색된다.

    한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0년 5월, 2010년 8월, 2011년 5월에 비공식적으로 중국을 방문하고, 2011년 8월에 러시아 방문 후 귀국길에 중국을 방문하면서, 북한은 북·중 간 전통적 우호관계에 대해 세대를 이어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하고 있었다. 결국 중국은 ‘전통계승, 미래지향, 선린우호, 협력강화’의 정신 하에, 고위급 교류 강화, 경제사회발전 촉진을 위한 경험교류, 호혜협력 확대, 국제·지역 정세 및 중대 문제에 대한 소통 강화 등을 제안했다.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Korea Trade-Investment Promotion Agency) 통계에 따르면 중국은 북한의 최대 교역 및 외자유치 대상국으로서 북한의 대(對)중 무역의존도는 2009년 78.5%에서 2010년 83.0%로 증가한 것으로 나온다. 특히, 5.24 조치 이후 북한은 1차 산품(무연탄 등) 수출, 주요 물자 수입(원유(90%p), 비료, 식량 등)의 무역구조를 지속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 핵실험을 완전히 차단할 계획이 있었다면 1차 실험 당시였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과 꾸준한 외교력으로 중국을 구워삶고 만다. 3차 실험 당시에도 시진핑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막지 못했다. 그리고 북한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10일 베이징으로 북한의 걸그룹인 모란봉악단을 비롯하여 100명의 합창단을 중국고위층의 위로수단으로 보냈으나 시진핑은 단호히 거절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1월6일 4차 핵실험을 하고 수소탄실험이라고 야단법석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은 지금 호랑이새끼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 중이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무상원조를 하며 북한은 동조하고 있다지만, 북한이 핵을 갖는 것만은 인정할 수도 없고, 더욱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권력이 동일하게 되는 것을 아버지가 질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하지만 북한이 수소탄실험을 성공리에 끝냈다면 중국도 어쩔 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호랑이새끼에게 할퀸 겪이고, 한·미·일은 닭 쫓던 개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중국 시진핑이 더 고민이 깊을 수 있지 않을까?


  출처;세계일보


  참고가 된 원문



 

2016년 1월 11일 월요일

약간 살찐 사람이 더 건강하다

     몸이 몹시 여윈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말라깽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제는 쉽게 쓰지 않는 것 같다. 더 속된 표현으로 ‘갈비’라든가 ‘갈비씨’ 또는 ‘빼빼’라는 단어도 세상 속에서 잠자고 있는 것 같다. 대신 ‘슬림(slim)'이라는 단어를 들여와 확실한 의미도 모르는 채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요즘까지는 말라깽이들이 슬림으로 판을 치는 세상이니 그 단어가 속되다 할 수 있겠는가?
하루 한 끼 식사를 하는 모델이나 연예인들도 허다하고, 영양결핍증에 걸리는 소녀들이 더 인기를 끈다고 하니 세상이 참으로 난해한 것 아닌가싶다.

    지난번에도 “날씬하다”라는 단어로 글을 만들었다. 날씬하다는 그 말은 말라깽이와 한참 다른 뜻을 지녔다. 특히 여자들에게 쓰는 말로써, 그야말로 나를 듯이 멋지고 상쾌한 느낌을 받지 않은가? 그에 비한다면 말라깽이는 살집은 별로 없고, 뼈가 피질 속에 감춰졌으나, 볼썽사납게 뼈의 모서리들이 피부에 닿아 거칠게 보이게 하는 느낌을 받지 않은가? 어딘지 어색한 몸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데 세상은 다이어트에 열에 다섯이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 또한 유행이다. 아무리 세상이 유행을 즐기며 산다고 해도 몸까지 유행이 돼서는 안 될 것 같다. 그저 날씬하기만 하면 얼마나 멋질 것인데 너무 지나친 것은 아닌가?

 



    SBS에서 ‘약간 살찐 사람이 더 건강?…비만 기준 논란’이란 보도가 눈을 끌게 한다. 내용인즉 세계보건기구는 비만 지수 30 이상을 비만으로 보는데, 우리나라와 중국 같은 아시아 국가는 25 이상을 비만으로 인정하고 있단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3명 중 1명은 비만이다. 그러나 정상 체중보다 조금 더 비만일 때 사망 위험이 오히려 낮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아시아인의 비만 기준이 적정하지 않다는 것 아닌가?

   1980년대에는 동양인의 비만 지수는 서양인과 식생활습관이나 체형이 달라서 살이 조금만 쪄도 성인병에 잘 걸리고 일찍 사망할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 즉 채식을 위주로 하던 식생활이 육식으로 바뀌면서 고비만이 늘었던 당시를 말하는 것이다. 고로 그 당시 다이어트는 무작정 굶는 것이 최고의 비법이라고 떠들고 있었다. 그 방법을 지금도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로 인해 1990년대 들어와서는 ‘거식증’ 또는 ‘폭식증’이라는 단어가 돌게 만들었다. 밥을 굶다보니 먹는 것이 싫어지는 병과 허기를 폭식으로 바꿔버린 병적 증상이다. 저지방 다이어트를 실시하게 된다. 그로 인해 당뇨인구가 늘어난다. 그리고 저탄수화물로 바꿔진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저탄수화물이 몸속에 독소와 염증을 유발한다는 발표가 따르면서 디톡스(detoxification, Detox) 다이어트로 건강한 몸만들기가 유행하게 된다.

    결국 적당한 영양성분을 섭취하면서 몸속 독소를 뺀다는 개념의 제독요법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올바른 다이어트라는 말이 나오기는 했어도 크게 탐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없지 않다. 하지만 무작정 굶는 것보다 과학적이라는 생각이다.

 

    디톡스 다이어트란 위키백과에서 “대체의학적 관점의 해독(解毒)은 인체 내에 축적된 독소를 뺀다는 개념의 제독요법을 말한다.”며 “물만 마시거나 한가지 음식만 먹는 방법도 있으며, 유기농산물, 제철음식을 주로 하며 비타민과 미네랄을 충분히 섭취해야 하고 가공식품, 육류, 소금, 설탕을 멀리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음식뿐만 아니라 유해물질로 가득찬 주거환경을 천연마감재로 바꾸고, 마음속의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는 분노, 짜증 등을 다스리는 명상 등도 넓은 의미의 디톡스라 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SBS는 과체중이거나 가벼운 비만인 사람들이 정상 체중보다 질병 조기 사망률이 가장 낮았다며, 정상 몸무게 사람들이 저체중처럼 근육량이 적어 뼈가 약해진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변동원 순천향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외국 기준으로 날씬한 (외국) 사람은 골밀도도 정상이지만 우리나라 (기준으로) 날씬한 사람들은 골밀도가 좋지 않게 달라지는 문제가 생깁니다.”고 했다.

 

   골밀도(骨密度, bone density)=뼈 발달과 함께 뼈 장애 특히 골조송증(骨粗鬆症 또는 골다공증)과 관련해서 문제되는 뼈의 무기질함량(bone mineral content)의 척도. 특정한 측정법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측정조건, 표시단위 등은 각각 명기돼야 한다고 영양학사전은 적고 있다.

골밀도가 낮아지면 원인모를 감기증상 같은 잔병이 자주 들게 된다고 한다. 심해지면 후일 골다공증으로 변하게 되어, 뼈가 쉽게 부러지게 된다.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교 교수는 “미국에는 골다공증 환자가 약 800만명 정도 있고, 골다공증까지 진행되진 않았지만 골밀도가 조금 떨어진 골감소증 환자는 2,200만명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선 아직까지 골다공증 환자가 몇 명이나 있는지 전국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최근 50-79세의 성인 4천여 명의 척추뼈를 검사한 결과 여자는 40.1%, 남자는 6.5%가 골다공증에 해당됐다고 하니 이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적고 있다. 또한 “골의 소실은 뼈를 만드는 활동과 흡수되는 과정의 불균형에서 발생한다. 보통은 골흡수가 먼저 시작되고 그 자리에 다시 뼈가 만들어져 균형이 이루어지는데, 이 조화가 깨져 골흡수가 더 많아지면 골밀도가 감소하게 된다. 사람의 많은 부분이 그렇듯이 골밀도도 유전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예컨대 부모 중 한쪽의 골밀도가 낮은 경우 자녀도 골밀도가 낮을 확률이 일반인에 비해 4.3배가 높고, 부모가 모두 낮은 경우에는 8.6배나 높아진다. 그러니 결혼을 할 때 배우자 부모의 뼈가 튼튼한지 살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나이가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위험요인이다. 갑상선 근처에 있는 부갑상선에서는 부갑상선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이건 뼈의 흡수를 담당하는 파골세포를 더 많이 만들어내 뼈 흡수를 증가시키고, 칼슘을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함으로써 골밀도를 감소시킨다.”고 했다.

 

    뼈세포에는 50개 정도의 핵이 들어있고 세포활동을 하는 미토콘드리아가 산소를 받아들여 호흡을 하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골의 소실과 생성이 나타나는 것인데 영양성분, 특히 칼슘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거나, 칼슘을 받아주게 하는 비타민 D를 섭취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파골세포가 조골세포보다 보다 더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술과 담배는 물론 다량의 커피를 섭취하는 이들에게도 치명적이다.

골밀도 건강만 우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적당하고 적절한 운동과 규칙적인 생활, 편식탈피가 올바른 건강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육체의 필수영양소를 온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체질을 가꾸기 위해 꾸준한 운동량은 필수다.

    또한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인체의 모든 세포활성화를 위해 올바른 건강호흡운동도 요구된다.

 

    건강의 필수요소라면 당연 뼈와 살 그리고 정신이다. 살이 어느 정도 붙어있어야 뼈를 보호하고, 뼈가 튼튼해야 살을 잘 붙이고 다닐 수 있는 것 아닌가! 더해서 무엇보다 정신이 투철해야 튼튼한 육체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살이 뼈만 가리는 물체로만 생각한다면 그 몸은 그 뼈 속까지 병들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일본 검진학회는 재작년부터 비만 기준을 25에서 27로 올렸다고 한다. 아니 우리도 서양처럼 30을 유지 한다고 해도 살이 쪘다고 할 것인가? 말라깽이에서 벗어나야 온전한 영양을 섭취하며 건강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정상 아닌가? 내 몸을 유행에서 탈피해야 건강해진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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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탄수화물 다이어트(출처; 아시아투데이)

 

 

  참고가 된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