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14일 목요일

김종인 더민주당 선대위원장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했다. 하지만 만일 죄가 있다면 그 죄는 그 본인이 더 잘 알 것으로 본다. 2011년 12월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축할 당시 비상대책위원으로 김종인 전 의원이 발탁될 때, 전여옥 의원은 본인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김종인 전 수석, 1993년 안영모 당시 동화은행장에게 2억1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 돼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고 하며 "당시 김종인 의원은 '공직 생활을 하면서 단 한 건도 이권에 개입한 사실이 없다'고 했지만 대법원은 유죄를 확정했다"고 문제를 제기한 사실이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두고 과거 민정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특정계파에 서지 않으면서도 ‘김영삼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파격을 보여 이후 김영삼 정부 때 표적사정의 대상이 되었다는 의견도 있으며, 개인 비리가 아닌 정권의 정치 자금을 받은 것인데, 당시 '특정인'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본인이 뒤집어썼다는 의견도 있다고 <위키백과>는 적고 있다.

    김종인(76) 더불어민주당(더민주) 선대위원장(선대위장)은, 일본제국(일제) 강제점령기(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들과 농민, 노동자들을 변호하며 법정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는 김병로(金炳魯; 1887.12.15(음)〜1964.1.13)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의 친손자로 알려지고 있다. 김병로 대법원장은 광복 이후에도 좌·우파를 포용하고 독재 정치를 비판하면서, 할 말을 하고 할 일을 다 하는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네이버캐스트는 적고 있다.


    김종인 더민주 선대위원장은 2012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면서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를 재조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자는 투표이후 경제민주화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기 시작하면서 김종인을 내몰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본시 박근혜는 경제민주화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야권과 민주당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공약이 나와 세력이 야권으로 몰리고 있자, 새누리당의 박근혜는 김종인 전 의원을 영입하고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로 국민을 호도하기 시작했다.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의 빈 공약의 포장을 김종인 당시 위원장은 속고 있었던 것 아닌가싶다.
     원래 김종인은 전두환 정권 당시 민주정의당 국회의원으로서 1987년 제9차 헌법개정 때 헌법 119조 2항, 경제민주화 항목을 요구하여 관철시켰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박찬종 전 의원은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경제 민주화는 이미 야당의 초안에 담겨 있었다. 여당인 민정당의 반대를 꺾고 관철시켰다. 여당 의원인 김종인이 한 일을 우리는 모른다"고 주장했다고 위키백과는 적었다. 김종인이 1987년 헌법상의 경제민주화 조항을 관철시킨 사람인지 아닌지에 관하여 논란이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 이전 그는 본시 경제학자이다.

    그의 학력을 보면,
1959년 중앙고등학교 졸업
1964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학 학사
1969년 뮌스터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1972년 뮌스터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로 됐고,
    그의 경력 시작도 1973.03~1988.02 서강대학교 경제학 교수부터다.


    분명 경제학에 깊은 학식과 경력의 소유자임이 틀리지 않을 것으로 본다. 새누리당은 그의 학문과 실력을 이용하고 토사구팽(兎死狗烹)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재벌기업을 정화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가 바로 설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한 것인데, 박근혜가 경제민주화를 할 수 있다고 본 것인가? 국민도 속았다.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군부독재자는 누구인가? ‘정경유착’의 창시자이다. 정치인과 경제인이 서로 필요한 돈과 정보를 주고 받으며 서로를 의지하고 비리정치를 유발시켜야 정치를 끌고 가는 것으로만 알고 있는데 어떻게 경제인들을 씻어내며 해부할 수 있을 것인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 국민인 것이다.

    1970년대 남서울(강남)이 개발된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많이 파악하고 있다. 고로 강남조차 도시계획이 잘 못 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한탄하는 이들이 얼마인가? 가까이 있어야 할 공공건물들이 제멋대로 퍼져있어 시민의 발길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고 교통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허허벌판을 개발하면서 기업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건물을 올리다보니 지금 시민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물론 땅값만 수백 배로 올랐지만 유용한 지역으로 하기에는 모자란다는 것이다. 왜? 당시 정치인들이 돈에 노예가 됐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재벌들만 배가 불러터지고 서민들의 삶은 바닥이 된 것 아닌가? 그걸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보겠다는 것이 김종인 더민주 선대위원장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박근혜는 보기 좋게 내팽개치고 말았다.

     박근혜가 내던진 그 냉대를 되갚을 수 있을까? 좋은 인재를 함부로 버렸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벌써부터 많은 네티즌들이 야권에서 김종인 부활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응원부대가 크다. 그는 꼭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기대해본다.

     그 할아버지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사고가 좌·우 세력을 품고 같이 한 것 같이 김종인 더민주 선대위장도 20대 총선에서 민주주의 꽃이 골고루 필 수 있게 도와 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국민을 위해서라도 꼭 야권이 단합되는 것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며 환영하는 바이다. 비리로 점철된 의원들은 골라내고 새로운 인제들을 영입해서 민주주의가 원활하게 자리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이어서 19대 대선에서 권력을 바꿔 경제민주화 꽃까지 피워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전두한 정권당시 경제민주화란 가당찮은 사안이었을 것이 빤하다. 하지만 그 뜻을 지니고 지금까지 버틴 것 또한 대단하다. 기왕 나간 길 더 곧게 이어 경제민주화까지 활짝 필 수 있게 되기 바란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조기선대위원장으로 김종인(76) 건국대 석좌교수를 영입했다. 김 전 의원은 한때 박
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교사로 잘 알려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참고가 된 원문


 

2016년 1월 13일 수요일

朴의 신년기자회견 섬뜩하다

     2016년 1월 13일 朴은 신년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했다.
    경향신문은 분석하기를 ‘북핵은 “중국이 나서달라”는 논리이고, 경제는 “국민이 나서달라”는 논리로 풀었다.
朴은 “북한의 태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정도의 새로운 제재가 포함된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또한 “앞으로 중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필요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고도했다. 더해서 “정부는 유엔 안보리 차원뿐 아니라, 양자 및 다자적 차원에서 북한이 뼈아프게 느낄 수 있는 실효적인 제재 조치를 취해 나가기 위해 미국 등 우방국들과 긴밀히 협력해 나가고 있다”고도했다. 개성공단 폐쇄 여부는 “추가 조치를 할 필요가 있는지는 북한에 달려 있다”고 북한에 맡기고 있다.
    당연할 것이다. 북한의 숨통을 쥐고 있는 중국도 북한 눈치만 보고 있는데 박근혜정권이 할 일은 없을 것으로 미룬다. 그저 국민 눈치 살피느라 동분서주(東奔西走)하는 것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을 뿐일 것이다. 그래도 콘크리트(concrete) 지지율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미룬다. 왜냐하면 새누리당 안엔 그만한 인물이 없었으니까.


    노컷뉴스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따끈따끈한' 소신을 드러냈다.”고 하며 “박 대통령이 이날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편향'이란 키워드를 강조한 것도 아이러니하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보도하고 있다.

朴은 "국정화를 반대하는 쪽에서 이런 저런 비판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아이들이 지금 배우고 있는 역사교과서가 편향된 이념을 가진 집필진에 의해 독과점 형태로 비정상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라했다. 또한 "검정 체제 하에서 어떻게 해보려고 시정을 요구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소송까지 벌이면서 무시해 지금은 국정화로 갈 수밖에 없다"고도했다.

    하지만 노컷뉴스는 '아이들이 지금 배우고 있는 역사교과서'와 달리, 박 대통령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 국정 교과서는 오히려 더욱 편향되고 독점적일 수밖에 없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고 보도한다.



    朴은 '보육대란' 우려를 낳고 있는 누리과정 예산 갈등과 관련, 편성을 거부하고 있는 7개 시도 교육감에 대해 "정치적이고 비교육적 행태"라며 직설적으로 비난하면서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누리과정은 꼭 필요한데, 아이들을 볼모로 잡고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정치적 공격수단으로 삼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특히 "작년까지 교부금으로 잘 지원했던 누리과정을 이제 와서 거부하고 있다"면서 "법을 고쳐 중앙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해도 좋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되려 반문하고 있다.

    하지만 3~5세 누리과정은 2012년 18대 대선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자가 언급한 무상보육 프로그램의 대선 공약이다. 지난 2012년 12월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을 확충하고, 아이 기르는 비용도 국가에서 적극 지원하겠다. 0∼5세 보육은 국가가 책임지도록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사업이다.

​    노컷뉴스는 “굳이 법을 고치지 않더라도 이미 누리과정 예산은 중앙정부가 직접 지원하도록 돼있다는 게 일선 교육청들의 얘기다.”며 “그런데도 정부가 지난해 10월 하위체계인 시행령을 바꿔, 누리과정 예산을 '의무지출경비'로 못박아 교육청에 떠넘기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는 3년 전 대통령이 되기 위해 공약을 남발했다는 증거이다.


    朴은 또 이날 담화에서 서울시의 '청년수당', 성남시의 '무상교복'이나 '공공 산후조리' '청년배당' 등 지자체의 각종 복지정책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고 한다. 박은 자신은 공약을 남발한 거짓증언자이면서도 이번 20대 총선을 겨냥하여 "선거를 앞두고 이런 선심성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 겁난다"며 "정부도 이런 선심성 정책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왜 안하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며 핀잔하고 있다. 더해서 "지자체가 이런 식으로 감당할 수 없는 선심성 사업을 마구잡이로 하면 최종 부담이 국가적 재정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강조했다는 뉴스를 본다.

    지자체는 정부 소관이 아니라는 것인가? 지자체는 다른 나라 일이란 말인가? 할 말을 잊게 만들고 있다. 더 이상 朴의 사고를 고찰(考察)할 필요가 있겠는가?
    우리나라일은 중국에 미루고 자신이 언급한 말을 되돌려 지자체장을 힐난하고, 경제는 국민이 알아서 하라고? 박근혜정권이 할 일은 무엇이 있나? 그저 명령이나 할 것인가?


    기자회견 중 朴은 “국회 기능을 바로 잡겠다”고 하기도 하며 “국회의 수준이 어떻게 법을 바꿔도 동물국회 아니면 식물국회가 될 수밖에 없는 수준밖에 안 되느냐는 거죠.”라는 말로 국회를 비하해야 직성이 풀리는가? ‘당리당략’, ‘사리사욕’ 등의 표현을 써가며 자신의 의견들이 국회에서 관철되지 않은 것을 핀잔과 힐난으로 대응해야 할 것인가? 자신이 낸 의견 중 무엇이 상대를 거스르게 했는지, 원천적인 것을 파악하고 분석을 하지 않는다면 나머지 기간 내내 가시방석을 깔고 앉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싶다. 그래도 초등학생이 기자회견 한 것 보다야 낫지 않았는가? 그저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아가야 할 것 아닌가?
    비판과 힐난 그리고 핀잔의 말만 쏟아내며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말을 들으니 걱정되기도 하고 이젠 섬뜩하기도 하다?
 




13일 오전 7시께 경기 파주시 광탄면, 의정부시 호원동 등에서 대량 발견된 북한이 보낸 대남전단지 /


  참고가 된 원문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113_0013834529&cID=10301&pID=10300
http://www.hankookilbo.com/v/0d838d6c569d45e3938f3b801a5fbb21

2016년 1월 12일 화요일

중국 시진핑이 더 고민이 깊다?

     2016년 새해 벽두(劈頭)부터 한반도에 스산한 전율이 일고 있었다. 박근혜정권에게 닥쳐올 것이 온 것인가? 끝내 국민에게 호된 경고를 던진 북한이다. 말이 북한수소탄실험이지 그 폭탄이 한반도에 떨어진다면 반쪽이 날아갈 만한 위력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직감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정권은 물론 국제사회에서조차 엉성한 반응만 있을 뿐 대항할만한 세력이 없어 보인다. 말로만 한·미·일 3국 동맹이지 북한 핵실험이 3차(2013)까지 올 때도 무엇을 했는지 남아있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북한이 1차(2006) 핵실험을 하고 세계는 심한 경기(驚氣=어린아이가 놀라서 몸이 비틀리는 증세)를 보이는 듯싶더니 이내 가라앉았다. 2차(2009) 때도 그랬다. 3차에서도 UN은 북한 제재수위를 높인다고 했지만, 높여진 것이라고 하기에는 북한이 너무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4차에는 수소탄실험이라고, 백만 배 이상으로 세상을 거머쥐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정권은 감히 손도 못 대고 그저 북한 주위만 뱅글뱅글 돌고 있을 뿐 결코 해낼 것이라고는 없을 것만 같다. 당연하다. 그 능력으로는 가당찮기 때문이다. 미국인들 할 수 있다고 보는가?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제3국에 제재)? 미국이 할 수 있었으면 처음부터 했지! 어림도 없다고 보지 않는가? 단지 중국뿐이다.


    그런데 중국이 할 수 있을까? 어림도 없다. 왜? 그동안 ‘북한의 중국창고’에 쌓아둔 것들이 얼마인데 중국이 북한을 제재를 할 수 있다고 보는가? 만일 북한을 중국이 제재한다면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단연 미국에게 동조하는 꼴이 되는데 중국이 할 수 있다고 보는가? 말도 되지 않는다. 그저 어쩔 수 없으니 박정권이 이리저리 뛰고 있을 뿐이다. 북한은 6자회담을 거부한지 오래건만, 6자회담 한국 수석대표인 황준국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3일 서울에서 한·미·일 3국 수석대표 협의를 하고, 14일엔 베이징에서 중국 쪽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 만난다고 한다. 19일엔 모스크바로 가서 러시아 쪽 수석대표인 이고리 모르굴로프 외교차관과 양자 회동할 예정이다. 단지 북한만 제외한 5자 수석대표가 연쇄 회동하는 격인데 어쩌자는 것인가? 좋은 성과가 있었으면 한다. 하지만 무엇이든 바랄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이 손을 쓰지 않는 한 아무 효과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가는 90%p 오일(oil)만 끊어준다면 간단히 해결될 사안이다. 기름만이 아닌 북한의 숨통을 쥔 중국이다. 하지만 중국이 절대 끊을 수 없는 처지다. 고로 시진핑(習近平)이 朴과 전화연결도 시키지 말라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 개통한 한·중 국방장관 간 군사 핫라인도 6일부터 일주일동안 먹통이다. 박근혜가 미국 오바마회동은 4번을 했지만 시진핑과 6차례나 만났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남아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단지 과거일 뿐이다. 지난해 중국 전승절 행사에 서방지도자 대부분이 불참했지만, 朴은 참석해 시 주석과 함께 열병식을 참관하고도 빛바랜 상태이다. 왜? 북한에 중국이 판을 벌려 논 것보다 우리판은 조족지혈(鳥足之血=새 발의 피)이기 때문이다.
만일 북한을 제재한다면 그 혜택은 고스란히 미국으로 돌아가고 만다. 중국이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중국도 호랑이새끼를 길렀다고 땅을 치고 있는 중이다.


    북한과 중국 관계를 보면 1949년에 수교이후, 중국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중국 인민의용군을 북한에 파병하고 수많은 중국인의 피를 북한 땅에 뿌렸다. 1953년에는 김일성이 중국을 방문하여, 경제·문화협조 및 지원 협정을 체결하였다. 1954년 북한과 중국 양자 간 총 교역액은 약 8,000만 달러로, 중국 총 교역액의 약 3.4%에 불과했다. 그러나 1958년에는 중요물자 공급 협정 및 차관제공 협정을 체결한다.
    1960년대~1970년대 중국과 소련이 갈등을 겪던 당시 중국과 소련은 서로 북한을 자기편으로 하려고 했다. 고로 1961년 7월에 김일성이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 ‘북·중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다. 1961년 11월에는 통상 및 항해조약을 체결한다. 1971년 9월에는 무상 군사원조(대략 3억~4억 달러) 협정을 체결했고, 1973년 6월에는 경제기술협조 협정을 체결한다. 그야말로 아버지와 아들나라가 된다고 했다. 또한 1963년 9월에는 류샤오치(劉少奇) 국가 주석이 북한을 방문, 1975년 4월에는 김일성이 중국을 방문, 1978년 5월에는 화궈펑(華國鋒) 당주석 겸 총리가 북한을 방문했다. 1978년 8월에는 중국의 군사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하여 친선을 도모한다.


    1970년대 말부터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 정치·외교·안보 분야에서 북한을 지지 협력함으로써 소련과 미국으로부터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시도를 한다. 1984년 북한의 3자회담 제의를 지지하고, 국제연합(UN, United Nations) 등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입지를 지지한다. 이 당시 북·중 최고지도자들 간 교류가 빈번하며, 김일성은 1982년, 1984년, 1991년에 중국을 방문했고, 펑전(彭眞) 전국인민대표대회(全國人民代表大會) 상무위원장이 1983년에 북한을 방문하였으며, 양상쿤(楊尙昆) 국가 주석이 1988년과 1992년에 북한을 방문했다. 또한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는 1989년에 북한방문, 장쩌민(江澤民) 총서기는 1990년에 북한을 방문했고, 리펑(李鵬) 총리가 1991년에 북한을 방문했다.
    하지만 경제 등 실질 분야에서는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서방세계와의 실리적 관계가 강화됨에 따라 북한 관계가 조금 멀어진다. 1990년 한·중 간 직교역 총액이 19억 달러로 전년 대비 117%p 증가한 데 비해, 북·중 간 교역액은 4억 8,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3%p 하락하기 시작한다.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안정된 주변 환경을 구축하면서, 북한의 급격한 몰락에 미국의 대(對)북 영향력 확대를 견제한다는 전략 하에 북한과의 관계는 정립하고 있었다. 고로 한·중 수교 이전, 북·중은 제반 측면에서 여타국보다 특별한 관계를 지속한 것이다. 중국은 북한과의 전통적 우호·협력 관계를 거듭 강조하며 북한체제유지를 지원하고 있었다. 양측은 공산당(노동당)은 물론 외교부간 대표단의 연례적 교환 방문 등 매년 당, 정, 군 사이에 상호방문을 지속적으로 실시했다.

   그러나 1992년 8월 한·중 수교 이후 북·중 관계가 전반적으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한다. 구소련의 냉전종식에 따라 군사적 동맹의식이 서서히 벗어나며,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펼침에 따른 이념적 결속력도 약화된다. 한·중관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북한의 대(對)중 신뢰감은 저하된다. 게다가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 류샤오치(劉少奇), 장첸(張震), 북한의 김일성, 최광, 김광진 등 양측 혁명세력들이 사망 또는 퇴진에 따라 지도층 간 유대감도 약화된다. 또한 1997년 황장엽 사건 및 타이완[臺灣] 핵폐기물의 북한 반입시도와 관련하여 북·중 간 갈등을 겪는다. 결국 1997년 8월 이후 개최해 온 4자회담 예비회담과 본회담 등에서 북한은 중국을 배제하려 시도했고, 중국과의 실질협의를 회피하여 북·중 간 불협화음이 드러난다. 이에 따라 양측 간 주요 인사의 교류가 줄어들게 된다.


    1998년 9월에 북한의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한 이후, 양측 간 고위인사 교류를 복원함으로써 관계가 회복된다. 1999년 6월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중국방문, 1999년 10월에는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부장이 북한방문, 2000년 3월에는 백남순 북한 외무상이 중국을 방문했다. 2000년 5월과 2001년 1월에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고, 2001년 9월에 장쩌민(江澤民) 국가 주석이 북한을 방문, 양국 관계가 회복한다. 2003년 10월에는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全國人民代表大會) 상무위원장이 북한을 방문한다.

    또한, 2004년 4월 김정일의 중국 방문과 북·중 수교(1949년 10월 6일) 55주년을 계기로 양국 간 친선·실무 대표단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교역 및 경제협력도 대폭 증가한다. 수교 55주년을 계기로 2004년 9월에 리창춘(李長春) 중국 당정치국 상무위원이 북한을 방문하고, 2004년 10월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다. 이로써 양국은 친선관계 및 협력강화 방침을 재천명한다.
    양측은 2005년 들어 당·정 교류가 활발하였는데, 2005년 2월에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북한을 방문했고, 2005년 3월에 박봉주 북한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2005년 7월에는 탕자쉬안 국무위원이 북한을 방문했으며, 2005년 10월에는 우이(吳儀) 중국 부총리가 북한을 방문한다. 특히, 2005년 10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방북이 북·중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대외적으로 과시한다.


    2006년 7월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고, 2006년 10월에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한 이후, 북한이 일방적으로 상황을 악화시켜 중국은 최초 대(對)북 비난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찬성을 했다. 결국 북·중 관계는 원활할 수 없었다. 중국이 기른 호랑이새끼를 최초로 세계시장에서 발로 걷어찬 겪이다.
    그러나 2007년 2월 13일 제5차 6자회담[베이징(北京) 개최]에서 북한이 핵 비확산에 합의한 이후, 2007년 7월 양제츠(楊潔篪) 중국 외교부장의 방북, 2007년 10월 류윈샨(劉雲山) 중국 공산당 선전부장의 방북 등을 통해 양국 정치관계가 정상화된다.

    2008년 이후에는 양국 간 공산당, 외교부 및 부총리급 이상 고위급 지도자의 교류가 빈번해진다. 2008년 1월에는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북한을 방문했고, 2008년 3월에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주 북한 중국 대사관을 방문한다. 2008년 4월에는 박의춘 북한 외무상이 중국을 방문하였고, 2008년 6월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이 북한을 방문했으며, 2008년 8월에는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베이징 올림픽(Olympic) 개막식에 참석했다.
    2009년 ‘북한·중국 우호의 해’ 개막식에는 김영일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여 참석하고, 폐회식에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북한을 방문하여 참석하였다. 아울러 중국의 다이빙궈(戴秉國) 국무위원, 량광례(梁光烈) 국방부장 등도 북한을 방문하였으며, 북한의 최태복 서기, 김정각 국방위원, 주상성 인민보안상 등도 중국을 방문하였다.

    그러나 호랑이새끼는 2009년 4월에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고, 2009년 5월에 제2차 핵실험을 했다. 양국 간에 다소 소원한 조짐이 나타나기는 했으나 2009년 10월 원자바오 총리가 북한을 방문한 것을 기점으로 양국 간의 전통적인 우호 협력관계가 쉽게 회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압록강 신교 건설, 중국의 창지투(長吉圖) 개발 계획 추진 등을 통해 북·중 간 경제개발 협력이 모색된다.

    한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0년 5월, 2010년 8월, 2011년 5월에 비공식적으로 중국을 방문하고, 2011년 8월에 러시아 방문 후 귀국길에 중국을 방문하면서, 북한은 북·중 간 전통적 우호관계에 대해 세대를 이어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하고 있었다. 결국 중국은 ‘전통계승, 미래지향, 선린우호, 협력강화’의 정신 하에, 고위급 교류 강화, 경제사회발전 촉진을 위한 경험교류, 호혜협력 확대, 국제·지역 정세 및 중대 문제에 대한 소통 강화 등을 제안했다.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Korea Trade-Investment Promotion Agency) 통계에 따르면 중국은 북한의 최대 교역 및 외자유치 대상국으로서 북한의 대(對)중 무역의존도는 2009년 78.5%에서 2010년 83.0%로 증가한 것으로 나온다. 특히, 5.24 조치 이후 북한은 1차 산품(무연탄 등) 수출, 주요 물자 수입(원유(90%p), 비료, 식량 등)의 무역구조를 지속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 핵실험을 완전히 차단할 계획이 있었다면 1차 실험 당시였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과 꾸준한 외교력으로 중국을 구워삶고 만다. 3차 실험 당시에도 시진핑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막지 못했다. 그리고 북한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10일 베이징으로 북한의 걸그룹인 모란봉악단을 비롯하여 100명의 합창단을 중국고위층의 위로수단으로 보냈으나 시진핑은 단호히 거절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1월6일 4차 핵실험을 하고 수소탄실험이라고 야단법석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은 지금 호랑이새끼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 중이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무상원조를 하며 북한은 동조하고 있다지만, 북한이 핵을 갖는 것만은 인정할 수도 없고, 더욱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권력이 동일하게 되는 것을 아버지가 질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하지만 북한이 수소탄실험을 성공리에 끝냈다면 중국도 어쩔 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호랑이새끼에게 할퀸 겪이고, 한·미·일은 닭 쫓던 개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중국 시진핑이 더 고민이 깊을 수 있지 않을까?


  출처;세계일보


  참고가 된 원문



 

2016년 1월 11일 월요일

약간 살찐 사람이 더 건강하다

     몸이 몹시 여윈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말라깽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제는 쉽게 쓰지 않는 것 같다. 더 속된 표현으로 ‘갈비’라든가 ‘갈비씨’ 또는 ‘빼빼’라는 단어도 세상 속에서 잠자고 있는 것 같다. 대신 ‘슬림(slim)'이라는 단어를 들여와 확실한 의미도 모르는 채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요즘까지는 말라깽이들이 슬림으로 판을 치는 세상이니 그 단어가 속되다 할 수 있겠는가?
하루 한 끼 식사를 하는 모델이나 연예인들도 허다하고, 영양결핍증에 걸리는 소녀들이 더 인기를 끈다고 하니 세상이 참으로 난해한 것 아닌가싶다.

    지난번에도 “날씬하다”라는 단어로 글을 만들었다. 날씬하다는 그 말은 말라깽이와 한참 다른 뜻을 지녔다. 특히 여자들에게 쓰는 말로써, 그야말로 나를 듯이 멋지고 상쾌한 느낌을 받지 않은가? 그에 비한다면 말라깽이는 살집은 별로 없고, 뼈가 피질 속에 감춰졌으나, 볼썽사납게 뼈의 모서리들이 피부에 닿아 거칠게 보이게 하는 느낌을 받지 않은가? 어딘지 어색한 몸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데 세상은 다이어트에 열에 다섯이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 또한 유행이다. 아무리 세상이 유행을 즐기며 산다고 해도 몸까지 유행이 돼서는 안 될 것 같다. 그저 날씬하기만 하면 얼마나 멋질 것인데 너무 지나친 것은 아닌가?

 



    SBS에서 ‘약간 살찐 사람이 더 건강?…비만 기준 논란’이란 보도가 눈을 끌게 한다. 내용인즉 세계보건기구는 비만 지수 30 이상을 비만으로 보는데, 우리나라와 중국 같은 아시아 국가는 25 이상을 비만으로 인정하고 있단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3명 중 1명은 비만이다. 그러나 정상 체중보다 조금 더 비만일 때 사망 위험이 오히려 낮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아시아인의 비만 기준이 적정하지 않다는 것 아닌가?

   1980년대에는 동양인의 비만 지수는 서양인과 식생활습관이나 체형이 달라서 살이 조금만 쪄도 성인병에 잘 걸리고 일찍 사망할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 즉 채식을 위주로 하던 식생활이 육식으로 바뀌면서 고비만이 늘었던 당시를 말하는 것이다. 고로 그 당시 다이어트는 무작정 굶는 것이 최고의 비법이라고 떠들고 있었다. 그 방법을 지금도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로 인해 1990년대 들어와서는 ‘거식증’ 또는 ‘폭식증’이라는 단어가 돌게 만들었다. 밥을 굶다보니 먹는 것이 싫어지는 병과 허기를 폭식으로 바꿔버린 병적 증상이다. 저지방 다이어트를 실시하게 된다. 그로 인해 당뇨인구가 늘어난다. 그리고 저탄수화물로 바꿔진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저탄수화물이 몸속에 독소와 염증을 유발한다는 발표가 따르면서 디톡스(detoxification, Detox) 다이어트로 건강한 몸만들기가 유행하게 된다.

    결국 적당한 영양성분을 섭취하면서 몸속 독소를 뺀다는 개념의 제독요법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올바른 다이어트라는 말이 나오기는 했어도 크게 탐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없지 않다. 하지만 무작정 굶는 것보다 과학적이라는 생각이다.

 

    디톡스 다이어트란 위키백과에서 “대체의학적 관점의 해독(解毒)은 인체 내에 축적된 독소를 뺀다는 개념의 제독요법을 말한다.”며 “물만 마시거나 한가지 음식만 먹는 방법도 있으며, 유기농산물, 제철음식을 주로 하며 비타민과 미네랄을 충분히 섭취해야 하고 가공식품, 육류, 소금, 설탕을 멀리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음식뿐만 아니라 유해물질로 가득찬 주거환경을 천연마감재로 바꾸고, 마음속의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는 분노, 짜증 등을 다스리는 명상 등도 넓은 의미의 디톡스라 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SBS는 과체중이거나 가벼운 비만인 사람들이 정상 체중보다 질병 조기 사망률이 가장 낮았다며, 정상 몸무게 사람들이 저체중처럼 근육량이 적어 뼈가 약해진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변동원 순천향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외국 기준으로 날씬한 (외국) 사람은 골밀도도 정상이지만 우리나라 (기준으로) 날씬한 사람들은 골밀도가 좋지 않게 달라지는 문제가 생깁니다.”고 했다.

 

   골밀도(骨密度, bone density)=뼈 발달과 함께 뼈 장애 특히 골조송증(骨粗鬆症 또는 골다공증)과 관련해서 문제되는 뼈의 무기질함량(bone mineral content)의 척도. 특정한 측정법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측정조건, 표시단위 등은 각각 명기돼야 한다고 영양학사전은 적고 있다.

골밀도가 낮아지면 원인모를 감기증상 같은 잔병이 자주 들게 된다고 한다. 심해지면 후일 골다공증으로 변하게 되어, 뼈가 쉽게 부러지게 된다.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교 교수는 “미국에는 골다공증 환자가 약 800만명 정도 있고, 골다공증까지 진행되진 않았지만 골밀도가 조금 떨어진 골감소증 환자는 2,200만명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선 아직까지 골다공증 환자가 몇 명이나 있는지 전국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최근 50-79세의 성인 4천여 명의 척추뼈를 검사한 결과 여자는 40.1%, 남자는 6.5%가 골다공증에 해당됐다고 하니 이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적고 있다. 또한 “골의 소실은 뼈를 만드는 활동과 흡수되는 과정의 불균형에서 발생한다. 보통은 골흡수가 먼저 시작되고 그 자리에 다시 뼈가 만들어져 균형이 이루어지는데, 이 조화가 깨져 골흡수가 더 많아지면 골밀도가 감소하게 된다. 사람의 많은 부분이 그렇듯이 골밀도도 유전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예컨대 부모 중 한쪽의 골밀도가 낮은 경우 자녀도 골밀도가 낮을 확률이 일반인에 비해 4.3배가 높고, 부모가 모두 낮은 경우에는 8.6배나 높아진다. 그러니 결혼을 할 때 배우자 부모의 뼈가 튼튼한지 살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나이가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위험요인이다. 갑상선 근처에 있는 부갑상선에서는 부갑상선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이건 뼈의 흡수를 담당하는 파골세포를 더 많이 만들어내 뼈 흡수를 증가시키고, 칼슘을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함으로써 골밀도를 감소시킨다.”고 했다.

 

    뼈세포에는 50개 정도의 핵이 들어있고 세포활동을 하는 미토콘드리아가 산소를 받아들여 호흡을 하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골의 소실과 생성이 나타나는 것인데 영양성분, 특히 칼슘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거나, 칼슘을 받아주게 하는 비타민 D를 섭취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파골세포가 조골세포보다 보다 더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술과 담배는 물론 다량의 커피를 섭취하는 이들에게도 치명적이다.

골밀도 건강만 우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적당하고 적절한 운동과 규칙적인 생활, 편식탈피가 올바른 건강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육체의 필수영양소를 온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체질을 가꾸기 위해 꾸준한 운동량은 필수다.

    또한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인체의 모든 세포활성화를 위해 올바른 건강호흡운동도 요구된다.

 

    건강의 필수요소라면 당연 뼈와 살 그리고 정신이다. 살이 어느 정도 붙어있어야 뼈를 보호하고, 뼈가 튼튼해야 살을 잘 붙이고 다닐 수 있는 것 아닌가! 더해서 무엇보다 정신이 투철해야 튼튼한 육체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살이 뼈만 가리는 물체로만 생각한다면 그 몸은 그 뼈 속까지 병들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일본 검진학회는 재작년부터 비만 기준을 25에서 27로 올렸다고 한다. 아니 우리도 서양처럼 30을 유지 한다고 해도 살이 쪘다고 할 것인가? 말라깽이에서 벗어나야 온전한 영양을 섭취하며 건강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정상 아닌가? 내 몸을 유행에서 탈피해야 건강해진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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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탄수화물 다이어트(출처; 아시아투데이)

 

 

  참고가 된 원문


2016년 1월 10일 일요일

南 쩨쩨한 대응에 갈라지는 국민

     버스는 지나갔는데 손을 들고 있으면 지나간 버스가 되돌아올까? 시간은 흘러가고 있는데 시계를 정지시킨다고 돌던 지구가 멈출 수 있는가? 북한 핵실험은 3차를 넘어 4차 실험까지 끝내면서 수소탄실험이라고 했는데, 대북확성기 방송한다고 다 끝낸 실험 북한이 미안하다고 할 것인가? 핵미사일 탑재가 가능한 미국 전략무기 ‘B-52’ 장거리 전략폭격기를 괌에서부터 들여와 한반도상공을 관통시켜 두 시간이나 비행시키면 북한이 실험한 수소탄이 없던 일로 되돌릴 수 있을까? 북한이 핵실험만 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제재조치를 했는데 북한이 무릎을 꿇었는가? 북한은 이젠 ‘자위적’이라는 말로 민족적ㆍ계급적 해방,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위하여 투쟁한다는 말로 대신하고 있다. 배를 퉁퉁 두드리며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저들을 향해 확성기방송이나 하며 미국 전략무기인 ‘B-52’ 장거리 전략폭격기를 상공에 띄워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북한 김정은 일가와 권력자들에게 충동질? 아니면 우리도 뒤를 봐주는 미국이 있다고 자랑? 알 것 다 아는 저들에게 무슨 시위를 하자는 것인가?


    경향신문은 “북 도발 때마다 단골 등장, 효과는 의문 “남북 긴장만 높여”라는 문구에 “핵미사일 탑재가 가능한 미국 전략무기 ‘B-52’ 장거리 전략폭격기가 북한 핵실험 나흘 만인 10일 한반도 상공에 나타나 120여분간 ‘무력시위 비행’ 후 괌으로 복귀했다. 미국은 B-2 스텔스 전략폭격기와 한·미 연합훈련을 계기로 핵추진 항공모함의 순차적인 전개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며 “이날 오전 6시(한국시간) 괌 앤더슨기지를 이륙한 B-52는 오전 10시30분쯤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한 뒤 동해상으로 북상했다가 한반도를 가로질러 낮 12시쯤 오산 공군기지 상공에 나타났다. B-52는 지상에서 기체 촬영을 준비하고 있던 언론을 위해 30여초간 100여m 상공에서 한 차례 선회비행을 한 후 서해상으로 남하해 30분 후 한반도 상공을 빠져나가 괌 기지로 돌아갔다.”고 하면서 “한·미 전투기 4대의 호위를 받으며 비행한 B-52의 언론 공개는 대국민용 ‘무력 에어쇼’ 성격이 짙은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하고 있다.


    북한이 모르고 있는 새로운 무기도 아니다. 단지 북한이 조심하는 물체임에는 틀리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목숨을 초개같이 버릴 수 있는 저들에겐 그렇게 큰 위협은 아니라고 본다. 그저 우리 국민들이 더 겁먹지 않았을까? 도대체 뭐하자는 것인가? 그저 우리 남쪽 땅은 미국의 동북아 방위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것만 느끼게 만들고 있다. 정말 우리는 북한의 핵실험만 바라보며 마음조이고 살아야 할 것인가! 더해서 박정권의 허무맹랑한 정책에 맞춰 춤을 춰야 할 일인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대책이 없다. 왜? 박정권의 외교적 한계와 20대 총선을 빙자하여 국민의 일부를 종북세력으로 몰아 갈 정치적 사고에 걸려 있어서다. 미국의 동북아 방어를 일본과 한국에 두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정책에 우리는 억지로 따라가야만 하는 불가피한 정책의 한계에 막혀있다. 그 세력은 1951년부터 이어져오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한국의 대미 관계를 보기 위해선, 미국이 주도한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를 위한 1951년 연합국과 일본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일협정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의 한미일 관계에 기초했기 때문이다.”고 하며 “2차 대전 전후처리를 위한 일본과 연합국 사이의 평화조약인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결국 일본의 전쟁책임을 관대하게 처리했다. 미국이 중심이 된 이 조약에서 소련·중국·한국은 서명국에서 배제했다. 미국이 일본에 주둔하고 개입해 일본의 안전을 지키는 내용으로 하는 미일안보조약도 맺었다. 다음 달인 1951년 10월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요청으로 한일회담을 시작했다.”며 한일회담부터 미국은 한국을 이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케네디 행정부에 이르러 미국은 한일관계개선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미 국무성이 주한·주일 미 대사관에 1962년 7월13일 발송한 전문에는 “합리적인 일본의 제안을 받아 한국 측이 흥정에 나서도록 만들기 위해 한국정부에 대한 추가적인 압력이 필요하다면 미국의 개발차관 공여가 협상타결과 관련돼 있다고 말하라”고 돼 있다. 한국정부 최고위층을 접촉해 청구권·무상공여·장기저리차관을 패키지(일괄타결)로 처리하도록 압박하는 내용도 있다.“면서 ”한일협정은 강제징용 등 피해자 보상금액을 놓고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미국은 한국에게는 실질적인 이익을 주는 반면 일본에게는 명분을 주는 방식을 선택했고, 미국이 3억5000만~4억5000만 달러의 금액을 제시해 협상을 압박했다. 한일 양국은 3억 달러에 협상에 합의했고, 양국은 각자 언론에 합의를 포장했다.”고 적었다. 또한 오마이뉴스는 “결과적으로 미국의 의도대로 한일협정이 타결됐다. 국내에서는 굴욕적인 한일협정 반대시위가 발생했다. 한일협정은 대일 굴욕외교면서 동시에 대미 굴욕외교였다.”고 적고 있다.


    결국 일본은 우리에게 가한 일본제국(일제)의 만행에 대한 배상책임을 미국의 힘에 의해 소액으로 해결해낸 셈이다.
    지금 美 CIA가 발표한 “공화당 65년 한일협정前 日서 6600만달러 받았다”는 내용이 작성자 세이라를 통해 공개되고 있다. 그동안 한일관계에서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한 내용들이 하나둘 세간에 흘러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65년 6월 한일협정 체결을 앞두고 당시 여당인 민주공화당이 일본 기업들로부터 미화 6600만달러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가 발견됐다.

민족문제연구소 현대사 사료 조사팀이 국사편찬위원회로부터 입수해 12일 공개한 미국 중앙정보국(CIA)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민주공화당이 일본 기업들로부터 자금을 받았다는 주장(charges)은 신빙성이 있다(well founded)”고 기술돼 있다.


1966년 3월 18일 작성된 이 보고서는 이어 “61년부터 65년까지 6개의 일본 기업이 100만∼2000만달러씩 총 6600만달러의 자금을 민주공화당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적고 있다. 이 자금은 민주공화당의 4년간 예산의 3분의 2에 해당되는 규모라는 것이다.

CIA는 이 보고서에서 당시 민주공화당 의장인 김종필(金鍾泌) 전 자민련 총재의 말을 인용해 민주공화당이 67년 대통령 선거운동 자금으로 2600만달러가 필요하다고 썼다.
 

또 한일협상 홍보(promotion)용으로 김종필 의장이 돈을 받았고, 민주공화당이 일본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 기업으로부터도 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정부 방출미 6만t을 일본에 수출하는 과정에 개입한 8개의 한국 회사가 민주공화당에 11만5000달러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이 문건은 2000년 국사편찬위원회가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넘겨받은 것이다. KBS는 광복절 특집방송 제작을 위해 이 문서를 민족문제연구소에 의뢰해 분석했다.

조세열(趙世烈)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한일협정 당시 여당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설이 처음 문서로 확인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자민련 유운영(柳云永) 전 대변인은 “김 전 총재는 CIA 보고서 내용과 관련해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 사실일 수도 없다. 이유는 미국이 어떤 형태로든 한일협상에 전혀 관여한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 같은 문서 내용은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KBS는 15일 오후 8시에 방송되는 ‘일요스페셜’에서 한일협정과 관련된 이 문서들을 공개할 예정이다.



[출처] 美 CIA “공화당 65년 한일협정前 日서 6600만달러 받았다”|작성자 세이라



    분단 65년 사이 북한이 남한에게 이번 핵실험 같은 사건, 또는 남파 무장공작원 김신조 사건이나 판문점 도끼만행 같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정치권은 국민의 경기(驚氣=놀람)를 이용하여 정치에 이용하기 바빴다.
    대통령은 물론이거니와 정치인들의 생각이 한 결 같아 세상에 알려진 올바른 대통령이 나오지 못한 것이다. 확실하게 들춰낸 비리 대통령 - 전두환 노태우 - 같이 모든 대통령들을 재판에 세웠다면 어떻게 됐을까? 말만 청렴결백(淸廉潔白)이라고 했지, 아무도 그 대상이 될 수 없는 이유가 무슨 이유일 것인가? 보리고개라는 말은 알면서 국민의 삶을 조이고 정치인들은 배를 두드리며 살았다. 겉으로는 막걸리 사발을 걸치는 쇼를 하고, 뒤로는 시바스리갈(Chivas Regal)로 취하고 있었지 않은가? 먹는 것은 별 것 아니라고 치자.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라도 했다면 다 눈감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대통령을 아무도 없었다. 자신의 명예와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돈의 노예들이 한국 대통령을 했다는 것을 어찌 해야 할 것인가! 그래서 명예 대통령이 없다. 그런데 지금 朴은 자기 아버지 박정희 독재자를 한국의 명예대통령으로 하려는 의도가 서서히 들어나고 있지 않은가? 막아야 한다! 철저하게 막아 세워야 한다.


    북한이 수소탄실험을 했으면 국민을 안정시킬 수 있는 방책을 써야 올바른 정치로 볼 수 있지 않은가? 헌데 박정권은 지금 찌질하고 쩨쩨하기 그지없는 방법으로 국민을 더 들쑤시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벌써 대북방송을 3일째 하고 있는 상황에서 11곳의 고정 확성기는 그렇다 치고, 6대의 확성기차량이 이쪽저쪽으로 이동하면서 방송을 하고 있다고 한다. 더군다나 북한 대남확성기 방송까지 떠들면서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상황까지 되고 있음이 빤하다. 전하는 언론보도는 우리 측 확성기가 더 멀리 전파된다고 하지만 북한 초소 쪽에서 같이 떠들고 있는 소리가 더 크지, 어떻게 남한 소리가 확실하게 북한병사들에게 들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또한 전시상태로 직면한 나머지 전방 주민들은 발이 묶인 상황이고, 평안한 마음을 가진 국민은 얼마나 될 것인가? 그래도 박근혜가 정치를 잘한다고 하는 얼빠진 생각에 취해 있는 이들은 도대체 또 무슨 심사라는 것인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한국은 마치 망해가고 있던 지난 베트남을 보는 것 같다.

    정권을 믿지 못하는 국민과 믿는다는 국민이 완전하게 갈라져 서로를 믿을 수 없는 국가가 되고 있다는 것 말이다. 제발 정신 좀 차리기 바란다. 하지만 집안이 망하려면 그 가족들이 산산이 흩어지게 마련이다. 어쩔 수 없는 지경에 놓인 상황에 개탄만 나오는 것을 어쩌랴!

괌에서 날아온 ‘B-52’ 미국의 전략무기인 B-52 폭격기가 10일 한반도 상공에 전개해 한국 공군 F-15K(왼쪽 아래) 등과 함께 비행하고 있다. B-52 폭격기는 120여분간 한반도 상공을 비행한 뒤 괌 기지로 복귀했다. 공군 제공


  참고가 된 원문

2016년 1월 9일 토요일

흙수저 노예 헬조선 비하공화국?

    
흙수저, 노예, 헬조선,
비하공화국
?


흙수저, 노예, 헬조선,
3포, 5포, 7포, 그리고 n포세대까지
새해도 한국의 인터넷 유행어?


한국인들 왜???
자기비하의 늪에 빠지고 있나?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지 못해
‘금수저’가 아닌 ‘흙수저’로?
월급쟁이는 이제 ‘노예’라?
한국은 한국인의 자부심 대신 자기비하
신종 유행병이 창궐해 ‘비하공화국’이라
그 이유가 무엇인가 묻는다면 단연
절망 때문?



이 자기비하 이들이 바로
향후 20~30년간 한국 경제활동을 책임질 청년들?
그러나
해마다 깊어지는 고통과 절망을
이기지 못해
자기비하?


아~~~
가계 빚은 늘고, 소득은 준다
자살은 늘고,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
청년들의 고통은 도처에 깔려진다.

취업을 포기한 청년을 ‘니트(NEET)족’?
그 비율은 15.6%p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 8.7%p의 두 배
통계청은 지난해 6월 기준 국내 청년실업률은 10.2%p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 발표
이는 '니트족'을 포함한 비경제활동인구는 뺀 수치다.


취직을 했다고 치자
이들은 ‘저녁이 없는 삶’

한국노동시간 OECD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2~3위
한국 직장인 평균 유급 휴가일수 연 14일?
OECD 가입국의 꼴찌
이 또한 모두 찾아먹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질 낮은 고용
2013년 8월 기준 한국 비정규직 근로자
22.4%p
OECD회원국 중 4번째.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의 비율도
22.4%p
OECD 회원국 평균은 53.8%p.

지난해 기준 한국 20~30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
절망에 정점?

치열한 취업지옥
열악한 근무환경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더 이상 개인의 희망만으로 절망을 이겨낼 수 없단다.
지난해 생겨난 유행어 ‘노오력’
절망과 자기비하에 사로잡힌 청년들에게
희망을 북돋우는 기성세대의 격려?
그저
아니꼽기만?


연애·결혼·출산 포기
‘삼포세대’
이젠
‘오포세대’, ‘칠포세대’ 그리고 ‘n포세대’?
청년들의 끝없는 절망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스펙을 지닌 노동력
그러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청년일꾼들.
힘들게 얻은 노동자는 파김치
결국 흙수저
노예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박정권도 정치권도 문제의 심각성 간파?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2015년 9월13일
수개월의 파행 끝에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극적 합의

朴의 대국민담화는 노동시장 개혁 강조
김대환 노사정위원장 복귀
박정권 강력한 추진 의지

그러나
청년 일자리 창출 방식도
임금피크제에 밀려 노사정위는 더더욱 갈등국면
결국 노동자만 울게 만드는
부자를 위한 朴정권


박정권의 임금피크제 도입이
13만개의 청년일자리를 창출?
그건 거품이다
근로자의 임금만 삭감하는 결론 아냐?

장시간 노동 현실 개선도
주당 근로시간 단축도
회의적 시각.

초과근무에 따른 추가임금 못 받고
그저 임금만 줄여야 한단다.

결국 헬조선?
왜?
박정권은 진정성을 버리고 소각시킨 지
오래이다.


박정권의 노동법 개혁은
근로자 임금은 깎아내고
근로시간 늘리며
근로자가 삐딱하면
시시때때 근로자 파면
그게
朴의
사고이기 때문이다.


흙수저, 노예, 헬조선,
비하공화국


출처;세계일보




 

2016년 1월 8일 금요일

북한 수소탄실험에 대북확성기 뿐?

     이조 500년 역사에서 우리는 충효(忠孝)사상을 전수받았다. 결국 공자(孔子) 철학으로 조정은 박살나려고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500년을 이끌었다. 그 긴 시간동안 충과 효에 대해 수많은 학자들이 그 사상에 대해 연구하며 나라를 이끌어왔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충효에 대해 언급을 하는 것 아닌가싶다.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말만 앞서가지 행동은 뒤에 따라가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공자께서는 “먼저 행동이며 그리고 말이다[先行其言].”라고 언급했다. 공자는 그의 도(道)에 대한 습명(襲明=밝고 명확하게 깊숙이 젖어있음)에 따라 그가 가고 행동하는 것이 바로 옳은 길이었기에 의도적으로 하려는 행동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타났을 것으로 미룬다. 하지만 그 제자들은 그런 자세가 나타나지 않았기에 이런 단어가 지금껏 유래되고 있지 않을까? 선행기언(先行其言), 가장 쉬운 일인 것 같으면서 지키기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


    북한의 수소탄실험이 끝난 6일 오전 한국 국가정보원(국정원)은 그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중국조차 알았는지 몰랐는지에 대해 논란이 일 정도이니 당연히 몰랐을 것으로 본다. 왜 북한이 새해벽두부터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것인가! 나쁘게 표현하면 한국 국민들이 말하는 북한의 발광에 김정은의 바보짓이다. 하지만 깊이 생각하면 저들에게 지금은 처절할 정도의 절박한 실정이 아닐까싶다. 고로 저들은 지금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에 매진하자!’고 김정은이 하는 호소 같은 명령이 아닐까본다. 북한은 그동안 중국 마오쩌둥(毛澤東)이 부르짖던 양탄일성(兩彈一星)을 김일성이 베껴와 북한에 심었고, 그 손자인 김정은이 실행한 것으로 보는 눈이 정확하다. 그런데 우리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겨우 한다는 짓이 진도 4.8의 흔들림은 수소폭탄실험이 아니라며 국방부는 북한의 핵실험을 꼬집는 발언이나 하고 있지 않은가? 4.8이든 4.9든 그 진도가 문제가 아니라, 북한이 이런 지경에 가기 전에 왜 차단을 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가슴을 쳐야 옳지 않을까?


    지난 7월 국방부는 목함지뢰를 휴전선근처에 북한이 설치한 것도 모르고 시찰도중 두 명의 하사관이 발을 다치는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결국 북한이 설치한 것으로 판정이 됐지만, 당시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면서 북한과 일촉즉발(一觸卽發) 전시상황까지 가려던 순간, 북한이 꼬리를 내리면서 8·25남북고위급보고문이 작성되며 일단락됐다. 이번에도 수소탄실험은 북한의 협상위반이라는 명목 하에 8일 정오를 기해 대북확성기방송을 재개하고 있다. 물론 북한은 협상을 위반했다. 북한도 우리 방송 몇 시간 뒤부터 같이 대남확성기 방송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정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런 일밖에 없는 것인가?
    한겨레신문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는 ‘전략적 자충수’’라는 제하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 등 국제 공조를 강화하는 데 전력투구해야 할 한국 정부가 오히려 국제사회의 대북 대응 전선을 교란시키고 있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고 보도하고 있다.


    생각이 깊은 이라면 이런 보도를 읽어야 한다. 그저 우리가 어영부영 넘어가던 지난 세 차례 북한 핵실험을 보던 눈으로 판단하려 해서는 안 된다. 목함지뢰를 북한이 설치한 것에 대한 지난해 우리의 항의는 남북 간 전술적 차원의 작은 틀의 전투에 불과하지만, 북한의 수소탄실험은 국제사회가 들고 일어난 사안이다. 이 거대한 전략적인 문제를 우리와 북한 간의 문제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북한도 항상 핵실험을 할 때는 남북한 대립이 아니라 미국과 적대관계를 먼저 논하고 있다. 고로 국제적인 전략이 앞서야 할 일이다. 안보리 제재조치에서 북한은 아직까지 무릎 꿇을 생각도 하지 않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북확성기방송으로 북한이 핵실험을 취소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사과할 일도 아닌 것이다. 만일 대북확성기방송이 원인이 돼 남북 전쟁이 발동된다면, 결국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북한의 핵실험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자행한 확성기 방송이 앞을 막게 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국제적인 문제를 국내로 끌어들인 우리에게 먼저 자잘 못을 추궁하게 된다는 것이다. 거대한 산이 가린 것을 돌아가야 할 것을 막무가내 그대로 올라가겠다고?
   이로 인해 박정권의 그 속내를 우리는 알 것 같은 것이다. 20대 총선을 이렇게 이용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벌써부터 보수우파들은 확성기방송 기사 댓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참으로 가관이다. 올바른 말을 그르다 한다고 꼭 그른 말이 될 수 없다. 오른 말을 그르다고 하는 이를 어리석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답이다. 박정권은 이젠 더 이상 국민의 일부를 종북이니 빨갱이로 내몰아 국민의 표를 긁으려는 어리석은 짓을 말아야 할 것이다.


    절박한 사람에게 하늘은 기회를 준다. 북한의 정치인들이 그런 위치에 있지 않을까싶다. 저들이 북한 김씨일가에 충성을 하는 이도 없지 않겠지만,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절박한 사람들도 없지 않을 것으로 미룬다. 결국 북한 김씨일가에 충성하는 꼴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번 수소탄 실험에 대해 그 날짜를 정확하게 알고 있던 나라는 없었다. 완전 베일에 감춰진 상태로 북한은 세상을 터트리고 말았다. 지난 12월 10일 북한의 모란봉악단이 중국 북경에 도착한 날 김정은은 북한을 시찰 하면서 수소탄실험 성공을 언급하고 있었다. 중국 시진핑과 수뇌부는 모란봉악단경연을 보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세웠다. 결국 12월12일 모란봉 악단은 일반군중 앞에는 서지 않겠다는 뜻을 감추고 공연 2시간 전 비행기 편을 이용하여 북한으로 조기 귀국하고 있었다. 그리고 15일 김정은은 수소탄실험을 명령했다. 그리고 1월6일 조급하게 북한은 4차 핵실험을 종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나라도 이렇게 빨리 핵실험을 할 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철저하게 입단속을 했다는 것인가? 심심하면 터져버리는 한국정권들과 참으로 판이하지 않은가? 이번 북한 수소탄실험을 보면서 대북 확성기방송으로 앙탈이라도 하려는 것에 점수라도 줘야 할 것인가?


    우리 정치인들에게 절박함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일자리를 잘라내면 잘라내라고 하지, 절박하게 매달리는 공무원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물론 구조조정을 한다면 나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거나 항의를 할 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일로 절박하게 매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일을 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큰 지장을 초래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에 충성하는 이는 있을까? 얼마나 많이? 분명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절박한 것만큼의 크기만큼 강한 충성심은 없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비리가 흥행하는 것 아닌가? 충성하지 못한다면 절박하기라도 해야 하고, 절박함이 없다면 충성심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한 것이 한국정부가 아닌가싶다. 고로 한국정권의 주변머리는 없다고 본다. 제발 충성심이라고 갖출 수 있게 최고 지도자가 일심(一心)의 길로 갈 수 있는 이가 탄생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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